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의 문제를 두고 조선과 러시아가 이주 방지책을 논의한 협상이다. 하지만 큰 실효는 없었다.
1864년부터 함경도 지방에 살던 조선 사람들은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지속적으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러시아 당국도 노동력이 필요하였으므로 조선인들의 유입에 특별한 제재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1869년에 함경도 일대의큰 기근으로 인해서 6천 여명의 조선인들이 고향을 버리고 러시아로 이주하는 등, 해가 거듭될수록 조선인 이주민의 수가 증가하자, 조선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조선에서도 이주를 규제하고자 하였다. 다만 두 나라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으므로, 지방 당국 간의 협상이 진행되었다.
1869년 12월에 러시아 극동의 남우수리스크(南Ussuriisk) 지역을 통솔하였던 트루베츠코이(Trubetskoi)공작은 노브고로드(Novgorod)경비대장인자첸코 대령을 포함하여 12명을 이끌고서 함경도 경흥에 이르러 경흥부사(慶興府使)와 논의하였다. 협상은 1870년 1월 24일에 끝났는데, 조선 당국에서 러시아로 이주하는 주민을 제어하고, 러시아 당국 역시조선 주민의 이주를 규제하면서, 이미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 가운데 뚜렷한 경제활동이 없는 사람들은 다시 조선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하였다.
러시아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처형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 협상의 결과에 크게 반발하며 귀국을 거부하였다. 결국 러시아 당국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러시아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에 대한 강제 출국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도록 하였다. 협상 이후에도 조선인들이 꾸준히 러시아로 이주하면서, 협상의 내용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 협상은 두 나라의 국교가 체결되기 이전에 지방 당국이 진행하였던 협상으로, 조선이 중국을 제외하고서 서양 국가와 가졌던 최초의 공식 외교 교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