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고려인 노동영웅은 구소련에서 1938년부터 1991년까지 사회주의 노동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은 고려인이다. 1938년 소련 최고회의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를 제정하였다. 국력을 신장시킨 경우, 경제나 과학, 문화 발전에 기여한 경우, 개인의 생산성이 월등히 향상한 경우 등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을 때 훈장을 주었다. 고려인은 농업이나 축산 분야에서 공적을 인정받은 경우가 많았다. 209명의 고려인이 칭호를 받았는데, 이중 북극성 콜호즈의 회장이었던 김병화는 2번을 받았다. 사회주의 노동영웅으로 불린 고려인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명예와 영광을 얻었다.
정의
구소련에서 1938년부터 1991년까지 사회주의 노동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은 고려인. 고려인사회주의노동영웅·고려인사회주의노력영웅.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고려인 사회주의 노동영웅은 벼, 면화, 사탕무우 등 농업 분야와 축산 분야에서 공적을 인정받았던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인을 농업전문가로 연결짓는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곧 카자흐공화국과 우즈베크공화국에 거주하였던 고려인들이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였기에, 자연히 농업 분야에서 노동영웅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카자흐공화국의 탈디쿠르간주(Taldy-Kurgan州) 카라탈(Karatal) 구역에서는 총 31명의 노동영웅 가운데 고려인이 29명이나 되었다. 또한 단일 경제공동체로서는 김병화가 이끈 북극성 콜호즈에서 모두 26명의 고려인이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는데, 이 숫자는 소련 전체에서도 높은 숫자에 해당한다.
칭호를 2번 이상 받았을 경우에는 고향 땅에 청동으로 만든 흉상을 세울 수 있는 영광을 얻었는데, 현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Tashkent州)에 있는 이전의 북극성 콜호즈의 입구에는 김병화의 흉상이 서 있다. 흉상은 정장 윗옷의 왼쪽 가슴에 붉은색 기장(旗章)에 금색 낫과 망치가 있는 훈장을 달고 있는 모습이다. 비록 흉상은 서 있지 않지만, 카자흐공화국 크질오르다주(Kzyl-Orda州)의 선봉(先鋒) 콜호즈를 이끈 김만삼(1882~1964)도 1947년에 벼농사를 시작한 뒤 성공적인 생산 업적을 내놓아 1949년 5월 20일에 사회주의 노동영웅으로 불렸다. 고려인 사회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을 특별히 ‘사회주의 노력영웅’이라고도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박환, 민속원, 2013)
- 『러시아의 고려인 백과사전』(최 브로냐 편, 모스크바,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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