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특정 산업 분야의 우수 노동자에게 준 최고의 호칭으로, 개인에게는 명예와 영광을, 소속 단체에게는 우수성을 상징하였다.
1938년 12월 27일에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에서‘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가 제정되었다. 처음에는 칭호만 주다가 1940년부터는 낫과 망치가 새겨진 훈장도 함께 주었다. 이 칭호는 국력을 신장시킨 경우, 경제나 과학, 문화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경우, 개인의 생산성 향상이 기준을 초과한 경우 등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을 때 주었다. 총 수여자는 20,605명에 이르며, 칭호를 2~3번 받은 사람도 있는데, 2번을 받은 사람은 AK소총을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등 205명이고, 3번을 받은 사람은 수소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드레이 사하로프 등 16명이다. 고려인은 모두 209명이 칭호를 받았는데, 북극성(北極星) 콜호즈(kolkhoz)의 회장을 맡았던 김병화(1905~1974)는 2번을 받았다. 이 칭호는 1991년 12월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없어졌다.
1948년~1951년에 많은 고려인들이 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1950년대~1960년대에 들어서는 몇몇 고려인만이 칭호를 받았을 뿐, 그 숫자는 점차 줄어 들었다.
고려인 사회주의 노동영웅은 벼, 면화, 사탕무우 등 농업 분야와 축산 분야에서 공적을 인정받았던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인을 농업전문가로 연결짓는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곧 카자흐공화국과 우즈베크공화국에 거주하였던 고려인들이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였기에, 자연히 농업 분야에서 노동영웅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카자흐공화국의 탈디쿠르간주(Taldy-Kurgan州) 카라탈(Karatal) 구역에서는 총 31명의 노동영웅 가운데 고려인이 29명이나 되었다. 또한 단일 경제공동체로서는 김병화가 이끈 북극성 콜호즈에서 모두 26명의 고려인이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는데, 이 숫자는 소련 전체에서도 높은 숫자에 해당한다.
칭호를 2번 이상 받았을 경우에는 고향 땅에 청동으로 만든 흉상을 세울 수 있는 영광을 얻었는데, 현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Tashkent州)에 있는 이전의 북극성 콜호즈의 입구에는 김병화의 흉상이 서 있다. 흉상은 정장 윗옷의 왼쪽 가슴에 붉은색 기장(旗章)에 금색 낫과 망치가 있는 훈장을 달고 있는 모습이다. 비록 흉상은 서 있지 않지만, 카자흐공화국 크질오르다주(Kzyl-Orda州)의 선봉(先鋒) 콜호즈를 이끈 김만삼(1882~1964)도 1947년에 벼농사를 시작한 뒤 성공적인 생산 업적을 내놓아 1949년 5월 20일에 사회주의 노동영웅으로 불렸다. 고려인 사회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을 특별히 ‘사회주의 노력영웅’이라고도 표현하였다.
사회주의 노동영웅으로 불린 고려인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면서 사회적으로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에 칭호는 무의미해졌지만, 2013년 3월에 러시아연방대통령 푸틴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각 방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룬 사람을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단어가 빠진 ‘노동영웅’으로 승인하면서, 다시 사회주의 노동영웅에 대한 명예를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