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은 1988년 2월에서 4월까지 서울대학교 조사단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1993년 7월 23일부터 8월 31일까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가월리 지점과 주월리 지점은 서로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두 지점을 비롯해 이 지역 일대는 하나의 큰 구석기 유적을 이루고 있으나, 대부분 지역이 경지정리로 지표형질이 심하게 변경되었다. 면적은 41,950㎡이며, 1994년 12월 21일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은 임진강과 그 지류인 한탄강을 따라 발달한 용암대지 위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중의 하나이다.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이나 전곡리 유적을 비롯한 임진강유역 용암대지 위의 유적은 모두 기본적으로 동일한 유적형성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퇴적층의 성격이나 유적의 연대 또는 유물군의 전반적 특징도 기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을 구성하는 유적의 퇴적층은 모두 여러 차례의 하천 범람에 의해 형성되었다. 두터운 퇴적층은 서로 시대를 달리하는 몇 매의 고토양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부에서는 주먹도끼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각종 석기가 발견되었다. 특히,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에서는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중 가장 정제된 형태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유물수습정황으로 보아, 임진강유역의 구석기 유적 중 유물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임진강유역에서 처음 발견된 전곡리 유적의 연대는 일반적으로 30만년 전 또는 20만년 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대관을 따르면,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도 수십만년 전에 만들어진 유적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전곡리와 가월리에서는 퇴적층 상층부에서 약 2만 4000년 전 일본 구주(九州)에서 날아온 화산재가 발견되어 이들 유적의 연대는 최저 약 2만년 전 무렵까지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임진강 유역의 용암대지 위에서 이들 유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아직 불명확하다. 그렇지만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에서는 용암대지가 만들어진 다음 그 위에 구석기 퇴적층이 쌓이기 시작할 때까지의 사이에 아주 긴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지질학적 증거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임진강유역의 구석기 유적이 수십만년 전 용암대지의 형성 직후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는 신빙성이 없다고 보인다.
현재까지의 자료로 볼 때, 용암대지 위에 구석기 유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8만년 전 무렵부터일 가능성이 크다.
파주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은 임진강과 한탄강 등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에서 확인된 석기공작과 같은 성격으로 밝혀졌다. 특히, 발굴과정에서 소형석기나 망치돌, 몸돌 같은 석기류가 다수 출토되어 이 지역 구석기시대 석기류의 제작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기초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