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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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작품
국가유산
판소리 유파 중 동편제로 노래하는 흥보가.
시도무형유산
지정 명칭
판소리(판소리)
분류
무형유산/전통 공연·예술/음악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무형유산(1996년 10월 14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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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판소리 유파 중 동편제로 노래하는 흥보가.
내용

판소리 유파 중 동편제로 노래하는 흥보가. 199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1996년 10월에 지정되었다. 동편제 흥보가는 송흥록(宋興祿)을 기둥으로, 그의 아우인 송광록(宋光祿)에게 전해지고, 다시 광록의 아들인 송우룡(宋雨龍)과 손자인 송만갑(宋萬甲)에게 전승되었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접목을 시도하여 뛰어난 음악성과 기량을 바탕으로 동편제 소리를 개혁한 송만갑은 송만갑제 흥보가를 박봉래(朴奉來)와 김정문(金正文), 장판개(張判介), 박중근(朴重根)에게 전했다.

박봉술(朴奉述)은 박봉래한테서, 박녹주(朴錄珠)와 강도근(姜道根:1918∼1996,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흥보가 보유자)은 김정문한테서 흥보가를 전수받았다.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박정례(朴貞禮)는 1925년 1월 23일 구례군 용방면 중방리 239번지에서 조부 박만조(朴萬祚), 부친 박봉래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박만조는 무속인(巫俗人)으로 송만갑과는 교우관계에 있었고, 34세(박정례 8세 때)에 작고한 박봉래는 송만갑의 판소리 제자로 당대의 명창이었다. 또한 박봉술은 그녀의 숙부가 된다.

이렇듯 판소리 가계에서 성장한 박정례는 자연히 부친한테서 소리의 영향을 받았고, 1936년 부터는 12년간 박봉술에게 소리 공부를 하였다. 1940년에는 하동 권번에서 강백천에게 사사하였고, 1970년부터 3년간 박녹주에게 흥보가를 배웠다.

박녹주의 흥보가는 박봉술의 그것과 서로 같은 바디지만 장단의 쓰임새가 약간 다른데, 박정례는 박녹주의 바디를 이어받고 있다.

즉, 놀부 심술타령 부분이 박녹주는 자진모리임에 비해 박봉술은 중모리이며, 흥보마누라 탄식 장면에서 전자는 중모리인데 후자는 자진모리이며, 가난타령에서 전자는 중모리+아니리인데 후자는 진양조+자진모리이다.

또한 흥보 밥먹는 대목과 놀부 박타는 대목이 전자는 없는데 후자엔 있다. 술상 차리는 대목이 전자는 휘모리인데 후자는 자진모리이다.

박정례는 정통 동편제 흥보가의 계승자로서, 우조와 계면조의 구별이 확실하고, ‘대마디 대장단’(장단과 사설의 붙임새가 규칙적으로 안배되고 원박대로 부름. 소리에 순전한 공력을 들여 통성으로 내지름)으로 동편제의 맛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참고문헌

『동편제 판소리 창본』(송순섭 편저, 한샘,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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