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용곡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북한 평양직할시 상원군에 있는 석기시대 인류화석 · 석기 · 토기 등이 출토된 동굴.
정의
북한 평양직할시 상원군에 있는 석기시대 인류화석 · 석기 · 토기 등이 출토된 동굴.
개설

1980년 5월∼1981년 7월에 발굴 조사되었다.

내용

제1호 동굴 유적은 용곡리 호장산 기슭의 벼랑 중턱에 있다. 남쪽으로 30°정도 치우친 동향의 석회암 동굴로 현재 강바닥으로부터 20m 높이에 있다. 유적 주위에는 소코굴·대흥리굴·검은모루〔黑隅里〕 유적 등이 있다. 발굴된 동굴 입구는 너비가 5∼6m, 높이가 3m였다.

처음 발견될 당시의 동굴 길이는 16m 였으나 퇴적물이 형성된 40m 구간까지 발굴하였다. 동굴의 퇴적층은 13층이고 총 두께는 21.05m에 달한다. 문화층은 8층 이상에 모두 5개가 있다. 발굴결과, 노지(爐址) 12개와 구석기시대 유물 86점, 신석기시대 유물 5점, 인류화석 30점, 각종 동물뼈 3,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제1문화층에서 석영석기 10점, 사암석기 1점, 석재 3점 등의 석기와 승냥이·범·큰쌍코뿔이·멧돼지·사슴·노루 등 3목 5과 6종의 558점이 출토되었다.

제2문화층에서는 규석제·석영제·사암제·화강석제의 석기와 머리뼈화석·아래턱뼈화석 등 인류화석 4점과 범·여우·너구리 등 4목 11과 16종의 총 5,152점의 동물화석 및 노지 3기와 골기 2점이 출토되었다.

제3문화층에서는 석영석기·규석·화강석석기·작은 석기·끝이 뽀족한 석기 등과 머리뼈화석·아래턱뼈화석·넙적다리화석·웃팔뼈화석 등 인류 화석 11점과 코불이·이리·너구리 등 2목 7과 12종의 총 1,698점의 동물화석 및 노지 5기와 골기 1점, 뼈화석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제4문화층에서는 석영석기 16점, 규석석기 4점과 아래턱뼈 화석·앞머리뼈화석·골반뼈화석·몸통뼈화석·넙적다리뼈화석·엉덩이뼈화석 등 인류화석 14점과 2목 5과 11종 792점의 동물화석 및 노지 4기, 골기 3점, 조각품 1점이 출토되었다. 제5문화층에서는 암청색 섬록암의 돌도끼, 갈돌 등의 석기와 웃턱뼈화석 1점, 질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제2호 동굴 유적은 자그마한 석회암 봉우리의 벼랑 밑에 남향으로 뚫린 쌍굴로 된 자연동굴이다. 동굴 주변에는 고인돌군이 있고 계곡 어귀에는 고인돌과 고대 유물포함층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동굴 내의 퇴적층은 10층이고 두께는 3.9m이다. 퇴적층 중 제7층만은 빨간 진흙층이 나타났다. 문화층은 제8층에서부터 제10층까지 3층뿐이다. 출토유물은 제1문화층에서는 석영석기·규석석기들로 대부분이 내리쳐 깨기수법, 약간의 때려내기수법으로 순내리쳐깨기 7점, 때려내기 2점, 내리쳐 깨기와 때려내기 5점이 있다.

제2문화층에서는 인류화석 2개, 석기 25점, 가락추 1점, 치레걸이 1점, 짐승뼈 897점, 인류화석, 석기류로 돌괭이 3점, 돌호미 3점, 돌도끼 6점, 돌낫 1점, 돌보습 2점, 돌자귀 2점, 숯돌, 부싯돌 5점, 골기류로 송곳 1점, 찔개살 3점, 토기류 100여 점, 토기밑굽 7점, 키가 낮고 입이 넓은 토기 2점, 달걀을 절반 자른 것같은 토기, 구연부가 외반된 둥근밑 새김무늬토기, 단지형태의 토기, 바리, 보시기형 토기, 무늬있는 것으로는 새김무늬, 누름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가락추 1점, 토기로 된 장식품, 산토끼·오소리·승냥이 등을 포함한 11종류의 동물뼈 897점이 출토되었다. 이것들은 신석기시대 경제생활의 복원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의의와 평가

제1호 동굴 유적은 구석기시대 문화층(1∼4)과 신석기시대 문화층(5)으로 구성되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유적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일찍부터 용곡 일대에서 살았음이 증명된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인류화석은 보존상태가 양호해 인류의 진화발전과 구석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제2호 동굴 유적도 사람들이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이 일대에서 살았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된다.

참고문헌

『룡곡동굴유적』(김일성종합대학, 사회과학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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