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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정몽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439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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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정몽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439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7권 4책. 목판본. 이 책은 대략 다음과 같이 9종의 간행본이 있다.

① 구본(舊本) : 1439년(세종 21)에 아들 종성(宗誠)과 종본(宗本)에 의하여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저자의 문인 변계랑(卞季良)의 <포은시고서 圃隱詩藁序>에 의하면, 1409년(태종 9)에 이미 유고(遺藁)가 수집되었다 한 것으로 보아, 이로부터 30년만에 초간본이 나온 것이다.

② 신계본(新溪本) : 1533년(중종 28)에 현손 세신(世臣)이 신계 군수로 있을 때 구본에 연보를 더하여 개간(改刊)한 것이다.

③ 개성 구각본(開城舊刻本) : 선조 초년에 개간된 듯, 확실한 연대는 미상이며, 구본에 시 3수가 첨가되었다.

④ 교서관본(校書館本) : 선조 초·중년에 활자로 간행한 주자본(鑄字本)이다.

⑤ 영천 초각본(永川初刻本) : 1584년(선조 17)에 유성룡(柳成龍)이 왕명을 받아 교정하여 다시 편찬, 이듬해에 완성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그 판본이 타버렸기 때문에, 선조 40년에 영천 군수 황여일(黃汝一)이 임고서원(臨皐書院)의 여러 선비들의 협조를 얻어 영천 초각본을 대본으로 다시 개간한 것이다.

⑥ 봉화 각본(奉化刻本) : 1659년(효종 10)에 후손 유성(維城)이 봉화에서 조판(彫板)한 것으로서, 연보고이(年譜考異)의 끝과 제축문(祭祝文)에 약간의 보속(補續)이 더해졌다. ⑦ 영천 재각본(永川再刻本) : 1677년(숙종 3)영천에서 재각한 것이다. 영천 구각본(永川舊刻本)에 봉화본의 보속조(補續條)를 더하고, 제가(諸家)의 기술(記述)을 신증 부록(新增附錄)으로 첨부하고 종래의 4권 분을 9권으로 나누었다.

⑧ 개성 재각본(開城再刻本) : 1719년에 후손 찬휘(纘輝)가 봉화본 4권에 다시 속록(續錄) 3권을 더하여 편찬하였다. 이 속록은 원집인 영천 초각본과 함께 ≪포은집≫의 정본(定本)으로서, 바로 조판되지 못하였다가, 1769년(영조 45)개성 유수 원인손(元仁孫)이 숭양서원(崧陽書院)에서 개간하였다.

⑨ 개성 신본(開城新本) : 1900년에 후손 환익(煥翼)이 숭양서원에서 영조 기축본을 주로 하고, 영천본(재각본인 듯)을 보(補)로 한 위에, 속록의 각 부분에는 ‘신증(新增)’이라 하여 그 뒤의 자료를 첨가, 간행하였다. 이 밖에 명종·선조 연간에 제주에서 새긴 ≪포은집≫판이 있었다고도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원집은 권수(卷首)에 1659년(효종 10) 송시열(宋時烈)의 중간서(重刊序)를 비롯하여, 노수신(盧守愼)의 서(1585), 권채(權採)의 시권서(詩卷序, 1438), 박신(朴信)의 시권서(1437), 변계량의 시권서(1409)와 목록이 있다.

권1·권2에 시 295수, 권3에는 잡저·화상찬(畫象讚)·명(銘)·제문·권자(卷子)·기·소 등과 습유·유묵을 수록하였으며, 권4는 연보고어와 부록이다. 연보고어에는 택(宅)·묘·비·서원·본전(本傳)·행장·갈음(碣陰) 등이 부재(附載)되었고, 부록에는 저자와 관련이 있는 문(文)·시부(詩賦)·용비어천가·서(書)·소·의(議)·제축고사(祭祝告辭)·제가기술(諸家記述) 등이 실려 있다.

속록은 권수에 숙종 이하 역대 어제(御製)와 저자의 유상(遺像)을 실었으며, 권1에 저자의 작품에 속하는 가(歌)·시·소·계·묘지명이 있고, 또 제의(祭儀)·상사곡(相思曲)이 부재되었으며 신증(新增)으로 대학의(大學義)·화상찬·시 등 원집이 편찬된 뒤에 얻은 것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권2 이하에는 연보(본래의 연보 속편)·유사(遺事)·상론(尙論)·사묘(祠廟)·포전(褒典)·진정(陳情)·찬술(讚述)·기제(記題) 등 8부문에 각각 해당 기록이 실려 있다. 이 밖에, 원집 끝에는 아들 종성의 시집발(詩集跋)을 비롯하여, 유보(柳溥)의 신계 개간발(新溪開刊跋), 유성룡의 발, 조호익(曺好益)의 중간발이 있으며, 속록 권말에는 후손 찬휘의 중간발과 송병선(宋秉璿)의 중간발이 있다.

이 책의 내용에서 본 바와 같이 저자는 문보다는 시를 더 많이 남겼다. 그의 시는 호일(豪逸)하고 웅심(雄深)하다는 평과 함께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어오는 실정이며, 특히 중국·일본 등 외국에 여러 차례 내왕하여 외국인들과 서로 주고받은 시편은 당시 외교의 사실과 문화 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저자가 동방 이학(理學)의 조종으로 추앙되어온 실정에 비추어, 오늘날 그의 학문적 업적을 보여주는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또 시문도 이 책에서 보다시피 당시 다른 문인들에 비해 매우 엉성하다.

그 원인은 아들 종성이 시집발에서 말하고 있듯이, 저자가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지었어도 곧 모두 폐기하여 백에 한 줄이 남았을 정도였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최후가 너무 참혹하였기에 유저들이 산일(散佚)되어 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두 차례나 영인, 발간한 바 있다. 즉, 1959년에 이제현(李齊賢)·이색(李穡)·이숭인(李崇仁)·길재(吉再)의 문집과 함께 묶어 ≪여계명현집 麗季名賢集≫으로 펴냈고, 1973년에는 ≪고려명현집 高麗名賢集≫으로 전녹생(田祿生)·한수(韓脩) 등 10인의 문집을 묶어 한 책으로 출간하였다.

≪포은집≫은 모두 1900년 개성에서 간행하였던 개성 신본을 대본으로 영인한 것이다.

참고문헌

「포은집해제(圃隱集解題)」(김상기, 『여계명현집(麗季名賢集)』,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59)
「포은집해제(圃隱集解題)」(안병주, 『고려명현집』,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3)
「삼은(三隱)과 여말한문학」(박천규, 『동양학」 9,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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