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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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포충사
철원 포충사
조선시대사
유적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조선후기 선천군수 김응하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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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조선후기 선천군수 김응하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내용

1619년(광해군 11) 후금과의 전투에서 당시 선천군수로 전사한 김응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건립하였다.

김응하는 명나라의 요청으로 새로이 흥기하는 후금을 토벌하기 위하여 도원수 강홍립(姜弘立)과 같이 좌영 군병을 이끌고 출정하였는데, 부차령(富車嶺)의 전투에서 명나라 군사가 크게 패하자 이를 구원하다가 전사하였다. 명나라 신종(神宗)은 그를 요동백(遼東伯)에 추봉하였고, 조선에서도 영의정에 추증하였으며,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특히, 효종대에 들어와 북벌론(北伐論)의 일환으로 존명의리(尊明義理)가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송덕비를 세우고 1665년 철원유생 임창립(任昌立) 등의 주동으로 그가 거처하던 곳에 사당을 세워 철원부사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1668년 철원유생들이 상소하여 포충사로 사액되었으며, 1871년(고종 8)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때에도 특별히 존속되었다. 이 건물은 6·25전쟁 때 불타버리고 현재는 1985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김응하장군묘비만 남아 있다. 안동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여지도서(輿地圖書)』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서원등록(書院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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