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고려영화협회(高麗映畫協會)에서 제작하였다. 제작자 이창용(李創用), 촬영 김학성(金學成), 조명 정경준(鄭景俊), 음악 김준영(金駿泳), 녹음 · 편집 양주남(梁柱南), 현상 일본 극동현상소이다. 김신재(金信哉) · 최운봉(崔雲峰) · 이금룡(李錦龍) · 전택이(田澤二) · 독은기(獨銀麒) 등이 출연하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난해의 한해로 농민들은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게 된다. 올해에도 또한 가뭄이 심하여 절망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마을 청년 독은기는 부유한 지주이며 친구인 김한을 찾아가서 벼 몇 섬만 꾸어달라고 애걸하였으나 친구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절망을 안고 허탈하게 돌아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농민 독은기는 하늘을 쳐다보며 환희에 차 자기 논으로 달려간다. 농민들도 남녀노소 없이 들로 달려온다. 갈라졌던 논바닥에 물이 고이고, 말라 시들었던 모 이삭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가을이 오고 풍년이 들었다. 온 마을 농민들이 한데 어울려 풍년가를 부르며 농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춘다.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향토색 짙은 정경묘사는 사실주의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으나, 극적 구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종반인 이 시기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영화령』을 선포하고 한국인 영화업을 통폐합시켜 관제 조선영화주식회사를 신설하였다. 때문에 고려영화협회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1942년 1월 4일약초극장(若草劇場 : 현재의 스카라극장)에서 개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