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는 이상적인 풍속과 문화, 자연과 사람, 사물, 예술, 또는 이를 향유하며 멋스럽고, 즐겁고, 자유롭게 사는 일 등을 아우르는 미적 개념이다. 고유의 전통사상을 이르는 풍류정신부터 옛 성현들의 예의와 도덕이 지켜지는 풍속이나 사람의 인품, 예술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일, 현실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흥, 쾌 등을 표현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용되어 왔다. 한편, 조선 후기 사전 및 한글 문헌에서는 음악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현재 풍류는 악곡의 갈래 및 악곡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람[風]’ · ‘흐르다[流]’라는 뜻을 가진 풍류라는 말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공유해 오면서 각국의 삶의 방식과 예술 양식을 통해 각기 특색 있는 개념과 용례를 구축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풍류도(風流道)라는 신앙적 성격을 띤 고유한 풍류의 맥을 이어오는 동시에 자연과 더불어 멋과 흥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노니는 삶의 문화를 형성하였다. 풍류는 자연과 사람, 사물, 예술, 현상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 또는 그것을 즐겁게 노닐며 향유하는 것, 향유를 통해 자유로움을 얻는 것을 뜻하는 말로, 한국인의 미적(美的) 심성과 그것이 구현되는 양상을 다층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가무희(歌舞戱)를 아우르는 ‘악(樂)’을 풍류로 일컬었다. 주악(奏樂) 그 자체를 풍류라는 명사로 지칭하거나, 주악과 연관된 공연 형태, 공연 주체, 악대의 편성, 연주자, 악기 등을 풍류 연관어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의 사전류에서는 ‘풍류’ 혹은 ‘풍뉴’라는 한글 표기로 한자 ‘악(樂)’을 표기하였으며, 이러한 용례는 한글 문학작품 및 판소리 창본류에서도 다수 확인된다. 이처럼 풍류라는 말이 ‘악’ 그 자체, 혹은 주악 관련어로 특정된 사례는 중국, 일본과 차별화된 사례이다. 좁은 의미로는 음악의 동의어이다.
우리나라의 풍류에 대한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진흥왕 주1.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을 인용한 이 글에서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현묘한 도’를 풍류라고 한다는 정의와 풍류도로 수련하여 전통적인 제례의식을 주관하는 풍류의 무리[風流徒], 즉 화랑의 면면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화랑들은 ‘도의로 서로 연마하고[相磨道義]’ ‘노래와 춤으로 서로 즐기며[相悅歌樂]’ ‘명산대천을 찾아 노닌다[遊娛山水]’는 설명이 있다.
‘도의로써 몸을 수련하는 것은 군생(群生)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요, 가악(歌樂)으로써 서로 즐기는 것은 풍류를 터득하는 길이요, 명산대천을 찾아 대자연 속에 노니는 것은 그곳에 임재한 신령과의 교제를 가지기 위한 것’이며, 이는 고대의 제천의식과도 맥이 통하는 것으로 풍류의 원모습과 근원을 제시하는 기록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밖에 삼국 관련 문헌에서 종교적 의미 외에 본받을 만한 사람의 남다른 면면을 이르는 ‘풍류’의 용례가 확인된다. 하나는 국선(國仙) 미시랑(未尸郞: ?~?)의 용모가 아름답고, 자제들에 대한 예의와 풍교가 남달랐으며 그의 풍류가 세상에 빛난 지 7년이나 주2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님 두 분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더위와 추위,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천진하게 노닐며 속세의 굴레에 매이지 않았음을 ‘몇백 년의 주3로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의 용모와 인품, 행동을 풍류와 연관지어 언급한 예는 고려시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 죽지랑 조에는 죽만랑(竹曼郞)의 제자 득오(得烏 혹은 得谷)가 「풍류황권(風流黃卷)」에 이름을 올려놓고 매일 주4는 기록이 있다. 「풍류황권」은 화랑의 명부로서 풍류와 화랑의 긴밀한 연관성을 드러내주는 용례로 중시된다.
고대 제천의식에 근원을 두고 이어 온 고유의 풍류 전통은 신라의 유풍(遺風), 혹은 선풍(仙風)으로서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전통으로 이어졌다. 곽동순(郭東珣)의 주5에 역대로 전해온 풍류가 고려조에 새롭게 경신되어 조상들을 즐겁게 하고, 상하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팔관회가 역대의 풍류와 화랑과 관련된 행사임을 시사한다.
고려시대 국가 축제의 하나로 지속된 팔관회는 명산대천오악(名山大川五岳)을 섬기는 행사로 선랑(仙朗), 즉 화랑들이 주요 역할을 맡아 거행되었다. 그러나 화랑들이 주관하던 신라의 유풍은 의종(毅宗)대를 기점으로 점차 퇴색되어 종교적 축제의 성격이 약화되었다. 팔관회는 고려 말까지 지속되었으나 더 이상 화랑들이 팔관회의 주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일반인이 화랑의 복색을 입고 참여하는 등 축제의 외형만을 이어갔다. 이와 같은 신라의 선풍 퇴조는 풍류의 개념에서 종교적 요소의 비중이 축소된 것으로 이해된다.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의 풍류 용례 외에 화려한 연회에서의 음주가무 향유, 향유를 잘 즐기는 사람, 자연에 대한 감흥, 예술적 재능, 기녀의 어여쁜 모습 등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어 그 개념이 더욱 확장된 양상을 보여준다. 고려시대의 궁중악무 중 중국 당 · 송대의 문학작품을 가사로 삼은 당악(唐樂) 곡 가사에 풍류의 용례가 언급된 예도 있고, 중국 명사들의 풍류 일화가 고려 문인층의 보편적 상식으로 이해되었으며, 그에 준하는 화려하고 난만한 음주가무의 향유를 ‘풍류’라 여겨 이를 본받고자 하는 풍조도 생겨났다.
조선시대의 풍류 기록은 고려시대에 비해 더욱 많고 내용도 다양하다. 풍류의 본래 의미와 관련된 문화 · 풍속 · 교화를 주제로 한 것부터, 산과 바다, 강, 호수, 폭포와 같은 자연 경관부터 누정을 비롯한 건축물, 정원, 꽃과 나무, 사람, 문방용품 등의 기물, 그림이나 글씨, 시문 그 자체의 아름다움 또는 그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것, 사람의 인품이나 재능, 태도, 언행, 취향이 뛰어나거나, 고상하거나, 멋진 것, 나이, 계절, 환경, 일상이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 친구를 방문하는 것,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글을 짓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여행을 하거나, 잔치를 하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 성적인 쾌락을 즐기는 것 등을 풍류라 일컬었다.
고려시대에 비해 풍류의 층위와 양상이 매우 확장된 반면, 종교적 의미를 지닌 신라의 유풍으로서의 풍류 개념은 선랑(仙郞)들이나, 최치원 같은 풍류인물의 유적지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문장에서나 언급될 정도로 약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가무희(歌舞戱)가 동반된 모임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을 의미하던 풍류의 뜻이 조선시대의 문헌 기록에서는 ‘가무희를 아우르는 악(樂)’의 개념으로 독립되는 양상이 확인된다. 풍류는 ‘악’과 동의어로서 공연 주체나 형태에 따라 장악원풍류(掌樂院風流), 사죽풍류(絲竹風流), 육각풍류(六角風流)라 하거나, ‘음악을 연주하다’라는 뜻의 한자어 작악(作樂) 또는 동악(動樂)은 ‘풍류[뉴] ᄒᆞ다’로, 연주자를 뜻하는 악공(樂工)은 ‘풍류[뉴] 아치’라 하는 등, 공연예술을 소재로 한 여러 기록에서 풍류라는 말을 음악, 혹은 노래와 춤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문헌상에서 풍류라는 말은 사람이나 자연, 어떤 정황을 나타낼 때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이상적인 면을 풍류라는 명사로 사용하거나, 다른 단어와 함께 풍류의 유무, 정도, 지속 여부 및 주체, 양태, 속성, 동반되는 매개, 효용 등을 수식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자연, 사람, 사물, 장소, 모임에 풍류가 있다 · 없다 · 깊다 · 넓다 · 많다 · 두텁다 · 풍족하다 · 적당하다 · 모자라다 · 단절되었다 · 이어받다는 표현으로 풍류의 존재 여부를 드러냈으며, 연관되는 단어와 결합되어 ○○풍류 혹은 풍류○○라고도 표기되었다.
풍류의 주체는 자연, 사람, 사물이 풍류를 지닌 것, 혹은 사람이 향유하는 시공간이며, 풍류의 양태와 속성, 동반되는 매개는 풍류 주체와 풍류스러운 일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묘사되었다. 고려 및 조선시대에 한문과 한글로 표기된 문헌에서 가려 뽑은 다양한 용례를 통해 풍류라는 말 속에 담긴 다층적인 면면을 제시해보기로 하겠다.
풍류는 ‘선왕(先王)의 이상적인 문화’라는 의미와 함께 시대와 국가, 사회 및 동류 집단, 가문의 좋은 풍속과 문화의 교화, 영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특히 과거의 미풍을 칭송하거나 회고할 때, 옛 문화가 전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의 아쉬움을 말할 때, 그 반대로 잘 전승되거나, 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상황을 말할 때 ‘풍류가 두텁게 살아 있는 세상’에 대한 이상과 바람이 선진풍류(先進風流), 전배풍류(前軰風流), 선배풍류(先輩風流), 유자풍류(儒子風流) 등의 결합어로 표현되었다.
풍류라는 말은 아름다운 산수와 명소, 건축, 특정 공간의 아름다움과 특별함, 또는 특정 장소와 건축의 명칭을 결합하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산림과 강호의 빼어난 경치와 풍취, 금강산을 비롯한 명산, 한강, 대동강 등의 강, 박연폭포, 경포대, 한송정, 압구정 등의 명소, 평양, 공주, 진주 등의 도시, 사찰이나 신축한 관아의 건물, 개인의 누정, 정원 등 건축 공간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낼 때, 이를 풍류의 공간으로 표현했다.
예를 들면 ‘송죽이 가득하고 강물에 달빛이 비치는 절[滿院松篁僧富貴 一江煙月寺風流]’[^6]의 운치라든가 ‘패서를 압도하는’[風流欲倒浿西州]’[^7], ‘동해가의 드높은[風流高擅海東隅]’[^8] 등의 수식으로 명소의 빼어난 위용을 드러낸 예라든가, ‘좋은 경치를 멀리서 감상하는 일’[최립(崔岦), “白鷗疎雨領風流:領。遙領也” 「해당화」 『간이집』 권8]을 풍류로 일컬었고, 이는 산수풍류(山水風流), 강상풍류(江上風流), 강호풍류(江湖風流) 등의 결합어로 표현되기도 했다.
풍류의 장소성과 관련된 풍류는 빼어난, 조화를 이룬, 풍요로운, 화려한 등의 수식으로 묘사되며, 이밖에도 명사들의 멋진 일화를 품고 있는 곳, 멋진 일이 있었던 곳,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또 ‘내가 홀로 풍류 즐기는 곳[當吾獨享風流處]’[^9], ‘풍류 성대했던 곳[袞袞風流地]’,[^10] ‘젊은 날의 풍류 즐기던 곳[少日風流地]’[^11] 등의 예는 특정 장소에서의 향유 의미가 일부 반영된 예이다.
한자어로 풍류처(風流處), 풍류지(風流地)로 표기된 풍류의 공간은 일반적으로 여느 풍류 장소를 가리키지만, ‘악’의 개념으로 쓰일 때는 ‘연주와 가무, 놀이가 있는 곳’을, 기생놀음이 있는 곳을 가리킬 때는 기방(妓房) 등 기생들의 연락(宴樂) 장소를 주12 이밖에 ‘음악을 위한 모임 장소’를 뜻하는 풍류방(風流房)이라는 명칭은 현재 조선 후기 가단(歌壇)의 활동이나 문인층의 음악 향유 근거지를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경향이 주13
그러나 20세기 초 민속지를 조사한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와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의 『조선무속의 연구(朝鮮巫俗の研究)』에 노량진풍류회의 구성을 소개한 문맥에서 풍류방이 ‘무속 집단의 모임 장소’를 가리킨 예는 풍류방이라는 용어가 특정 음악의 성격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람의 용모와 성품, 재능, 태도, 행동, 취향을 평가하고, 찬사와 칭송,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표현할 때도 풍류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인물의 전반적인 모습과 행동거지를 ‘좋은 본보기’로 칭송할 때 ‘풍류인’, ‘풍류인물’, ‘풍류재사’ 등의 술어로 지칭하거나 구체적인 면모를 드러낸 예들이 확인되며, 풍류인물로서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면면은 전기(傳記) 성격의 글이나 행장(行狀), 선비들이 주고 받은 시문, 문학 작품의 주인공 묘사에서 주로 드러난다.
풍류인물의 성품은 진순, 돈후, 침착, 담박, 활달, 호탕한 면이 칭송되었다. 이 중 활달, 호탕한 면모는 한문 고전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소설, 시가 문학 작품에서 술과 가무, 미인, 여색의 향유와 연동되면서 거리낌 없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의 구가, 혹은 지나친 퇴폐로 묘사된 경우가 있다.
풍류인물의 자질과 재능은 문장과 학식이 능숙하고 정밀한 것, 관료로서 사무 처리 능력이 출중한 것, 시문을 잘 짓는 것을 주로 일컬었으며, 술을 잘 마시는 것, 예술에 재능이 있는 것도 포함되었다. 풍류인물의 태도와 행동은 삶의 지향점과 뜻이 맑고 깨끗한 것, 예법을 알아 태도와 행동거지가 반듯하고 침착한 것, 선배들의 좋은 문화를 이어받아 후배들에게 전하는 것, 교제가 담박한 것, 취향이 고상하고 섬세한 것, 멋과 흥을 추구하는 것, 시서화(詩書畫) 및 음악을 즐기는 것, 유흥과 쾌락, 일탈을 즐기는 것 등등을 일컬었다.
인물과 연관된 풍류 용례는 풍류인물(風流人物) · 풍류재자(風流才子) · 풍류호객(風流豪客) · 풍류공자(風流公子) · 풍류노(風流老) · 풍류객(風流客) · 풍류랑(風流廊) · 풍류인(風流人) · 풍류인걸(風流人傑) · 풍류호걸(風流豪傑) · 풍류남자 · 풍류소년 등의 술어로 표기되었다. 특정 신분, 직위, 직책을 가진 이의 풍류스러운 면모를 드러낼 경우에는 학사풍류(學士風流) · 한림풍류(翰林風流) · 판사풍류(判事風流) · 어사풍류(御使風流) · 도위풍류(都尉風流) · 풍류문인(風流文人) · 풍류교관(風流敎官) · 풍류상국(風流上國) · 풍류순찰사(風流巡察使) 등으로 일컬었다.
풍류인물과 관련된 술어 중 풍류객, 풍류인은 풍류를 갖춘 사람,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의미 외에 풍류가 악의 개념일 때는 가무희 전문 종사자를 뜻하며, 관련어로 풍류비, 풍류아치 등이 있다.
이밖에 꽃과 나무, 바위와 같은 자연물이나 예술품, 문방 용품이나 생활 용기 등의 기물이 멋스러운 것을 사람의 경우와 같이 ‘풍류를 갖춘 것’으로, 그것을 가까이 두고 가꾸며 감상하는 것을 아상(雅賞)이라 하여 풍류스런 일로 표현하였다.
풍류 향유의 사례는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으로 분류해서 살필 수 있다. 일상의 공간은 ‘성중의 풍류 맛은 떨어지고 / 산속이래야 기상이 원만하지[城邑風流減 / 山林氣象贏]’라는 표현처럼 도시보다는 산림이 선호되었고, 도시라도 아름다운 경치와 소나무, 대나무, 버드나무, 바위, 꽃이 어울린 곳, 맑은 샘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독락(獨樂)을 즐기거나, 찾아오는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 · 서 · 금 · 주 · 기(詩 · 書 · 琴 · 酒 · 碁)’ 또는 차를 즐기는 것을 한아(閑雅)한 풍류 일상으로 여겼다.
이런 일상의 풍류는 구체적으로 허균의 『한정록(閒情錄)』의 범례에 제시된 한거(閑居) · 한적(閑適) · 퇴휴(退休) · 아치(雅致) · 숭검(崇儉) · 임탄(任誕) · 광회(曠懷) · 유사(幽事) · 명훈(名訓) · 정업(靜業) · 현상(玄賞) · 주14과 맥이 통하며 인물 산수도를 비롯한 조선의 미술작품에도 반영되었다.
한편, 일년 중 계절이 아름다운 때, 살아가는 동안 맺은 여러 관계들의 갖가지 공적인 계회(契會)나 사적인 모임이 있을 때, 문희연(聞喜宴)이나 경수연(慶壽宴) 같은 큰 경사가 있어 잔치를 벌일 때, 집을 떠나 산수를 유람할 때와 같이 특별한 날에는 일상과 차별화된 특별한 풍류를 향유했다.
담백하게 자연, 경치를 즐기는 수준의 야외놀이부터 술과 문학, 음악, 글씨와 그림 등의 예술을 갖춘 시회(詩會) · 문회(文會) · 아회(雅會), 여럿이 어울려 악공, 기생들의 연주와 가무가 동반된 성대한 연회, 궁궐이나 관청에서 주최한 공 · 사 연향에서 여러 유형의 놀이를 즐겼다. 개인적인 소규모 모임으로 별서(別墅)와 누정, 사랑채에서 차와 술, 주15를 조촐하게 즐기는 풍류는 아회도(雅會圖)로 범주화된 회화작품에서 살필 수 주16
가무음주가 동반된 성대한 비일상의 풍류는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수록된 노래 「자하동(紫霞洞)」에 묘사된 채홍철(蔡洪哲)의 중화당(中和堂)의 주17처럼 ‘음악소리 가득한 곳에서 좋은 음식과 술, 빼어난 가무를 즐기는’ 것이나, 왕희지(王羲之) · 석숭(石崇) 등의 중국 풍류 일사(逸士)들의 모임을 생애의 호사(好事) · 낙사(樂事) · 승사(勝事)로 흠모하며 일상에서 재현하거나, 자신들의 모임을 그에 비견하는 예가 많았다.
또한 『청구야담(靑邱野談)』에 실린 「유패영풍류성사(遊浿營風流盛事)」에는 ‘스스로 풍류 즐기는[風流自娛] 재력가’ 심용(沈鏞)의 ‘풍류 미담’ 세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한양과 평양에서 당대의 이름난 금객(琴客) · 가객(歌客) · 악공 · 가기(佳妓)들이 무리를 지어 화려한 풍류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서 조선 후기의 특별한 향유의 규모와 내용 일면을 엿볼 수 주18
이상에서 살핀 것 외에도 풍류라는 말을 사람의 기질과 태도, 실천뿐만 아니라 글 쓰는 이가 개별적으로 이해한 풍류의 본질과 속성을 드러내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례는 개인별, 계기별로 매우 다양하게 언급되었지만, 흥미로운 면이 있고, 이를 종합하면 대체로 공통된 지향성을 추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풍류는 ‘도처에 있어 풍류 아닌 것[곳]이 없다’는 인식부터 ‘누리기 힘든 희소한 것[風流賞亦稀 / 生平最欠風流事]’이라는 인식이 병존한다. 또 풍류의 순간은 찰나이고 일시적이어서 지나고 보면 허무하다[風流元易恨 / 風流悵逝川]는 소회를 밝힌 예도 있다. 이런 풍류의 속성에 대해 신흠(申欽: 1566~1628)은 ‘아무리 만족스럽게 풍류를 즐겨도 그 시간이 한번 지나고 나면 문득 비애의 감정이 솟구치는데, 적막하면서도 맑고 참된 경지에서 노닐게 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의미(意味)가 있음을 느끼게 주19며 풍류의 지속은 참된 경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한 ‘풍류는 본래 물화를 타고 변화하는 것[自是風流乘化變]’이라고 말한 예는 풍류의 변용성에 대한 언급으로 주목된다.
둘째, 풍류스러운 것으로 표출되는 기질과 속성은 담박한 것[風流澹蕩], 진토의 기운이 없는 것, 온자한 것[蘊藉風流健], 마음가짐이 넓은 것, 전아하고 소박한 것[雅素風流簡默姿 / 雅素風流謹厚姿], 진솔한 것, 단정한 예법과 유아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至其雍容禮法。被服儒雅], 신선 같은 것, 조용하고 단아한 것, 활달한 것, 호탕한 것으로 언급되었다.
셋째, 이상의 기질과 속성은 본래 타고나거나, 사는 동안 삶의 태도와 실천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근본의 실체를 돈독히 하고 청검(淸儉)에 힘쓰고, 예절을 아는 것,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은 것, 벗을 대할 때 진심으로 하는 것,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이 바뀌지 않는 것, 명예에 급급하지 않는 것, 권세에 구속받지 않는 것, 호방하면서도 사리에 어긋나거나 과격한 데로 흐르지 않는 것 등이 풍류적인 행동으로 꼽혔다.
넷째, 풍류의 실천은 기본적인 생활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서, 무예, 선술(仙術) 등으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수양하고, 일상에서 홀로, 또는 여럿이 함께 자연과 시서화금(詩書畫琴) 등의 예술과 술과 차, 음식, 놀이를 적극적으로 즐겨 흥을 얻는 것으로 기술되었다. 뿐만 아니라 건축물 등이 피폐해진 것을 새롭게 보수하는 것[非若風流亭豈成[^20] / 주21 / 深覺職事弛廢 주22]도 풍류를 더하는 실천으로 묘사된 예도 있다.
풍류의 실천 중에서 가장 많은 용례는 ‘노니는 것’에 관한 것이다. 노니는 것은 그 양상에 따라 자적(自適), 자오(自娛), 자유(自幽), 청유(淸遊), 유흥(遊興), 유흥(幽興), 청흥(淸興), 가흥(佳興), 만흥(漫興), 진흥(盡興) 등의 술어로 흥의 성격과 정도를 나타냈고, 산흥(山興), 화흥(花興), 시흥(詩興), 가흥(歌興), 주흥(酒興), 전다흥(煎茶興) 등의 술어로 노님의 매개를 드러냈다.
적극적인 실천으로는 자연에 귀의하는 것, 유유히 속세를 떠나는 것, 산과 들의 꽃과 풀이 사랑스러운 때를 놓치지 않는 것, 뜰앞에 오동나무와 파초를 심어 맑은 그림자가 너울거리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이 자연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것에서부터 얼음을 깨고 고기를 낚는 것, 꽃을 꺾어 머리에 꼽는 것, 벼슬살이하는 것에 지쳐서 당시의 명사들과 산사나 학사를 오가며 시와 술로 유유자적함을 누리는 것, 달 아래 벗이 술병을 차고 오는 것, 눈발 흩날릴 때 술집을 찾아가는 것, 술을 잘 마시는 것, 마음껏 취하고 노는 것, 달뜨는 밤이면 모여 손수 거문고를 타는 것, 누워 그림을 감상하는 것, 호쾌(豪快)한 인사들을 대동하고서 주육(酒肉)을 산처럼 쌓아 놓고는 가무의 눈요기를 실컷하며 주흥이 도도한 상태에서 마음이 쾌적한 가운데 다른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명인들의 가무를 즐기며 풍류의 주인이 되는 것 등 흥을 돋우는 매개를 활용하는 예가 무수히 많다.
이러한 풍류의 실천은 응어리진 것 하나 없이 속마음 모두 털어놓는 행위[相出肺肝無芥滯]로 흉중의 비루한 마음을 없애주며[卽無鄙吝滯胸], 풍류만 있다면 볏짚 자리 깐 자리가 좋은 요를 깐 것보다 낫고[槀鞂溫存勝藉裀], 별맛 없는 언 부추도 사탕수수 먹는 것 같고[凍虀酸薄如噉蔗], 돈도 필요 없어져[明月相隨不用錢]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효용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다시 한번 시를 노래하며 남은 기쁨 다합시다[更將文字盡餘歡]라는 권유나 극적인 즐거움이 있는 풍류의 시공간을 환장(歡場), 선경(仙境), 선계(仙界)라 표현한 것은 풍류를 통한 초월적인 비현실 체험의 면면을 보여준다.
풍류는 일반적 풍류 개념과 별도로 가무희를 아우르는 악(樂)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가장 이른 용례로는 고려 고종(高宗) 때의 문신 이수(李需)가 지은 「교방소아(教坊小娥)」라는 시에 ‘천 가지 풍류로 옥궐에 조회하니[千種風流朝玉闕]’라는 구절이다. 이 문장에서 ‘천 가지 풍류’란 궁중 여악들이 펼치는 공연을 의미하며 문맥에서는 「헌선도(獻仙桃)」를 추는 모습이 묘사되어 주23
조선 태종(太宗) 때에는 왕의 측근에서 주악을 담당하는 여악을 두고 이를 ‘내풍류(內風流)’라 하였는데 [^24] , 이때 내풍류는 내악(內樂)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16세기 문헌 『묵재일기(默齋日記)』에는 ‘참군(參軍) 댁에서 머물 때 주인과 술을 함께 마셨는데 주인이 나와 함께 일어나 춤을 추자 풍류비(風流婢) 7, 8명이 각기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주25거나, 거문고와 가야금을 연주한 연주자를 ‘풍류인’(風流人)‘이라 한 예가 보인다.
풍류가 명확하게 음악 의미로 사용된 조선 후기의 기록 중에는 홍대용(洪大容)의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26]이 있다. 거문고를 가지고 사행길에 동행한 홍대용은 연행 일정 중 수시로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중국 음악 견문을 한글로도 기록했는데, 이 글에서는 ‘부ᄉᆡ 거문고ᄅᆞᆯ ᄐᆞ라 ᄒᆞ거ᄂᆞᆯ~~ 풍뉴ᄅᆞᆯ 듯고져 ᄒᆞ야 드러왓노라’라는 예와 같이 내용 전반에서 음악 연주를 ‘풍뉴’ 또는 ‘픙뉴’, ‘풍유’로 기술했다.
중국으로 가던 중 평양부(平壤府)의 기악을 감상할 때 공연 도구가 새롭게 구비된 것을 두고, ‘풍뉴 긔계ᄂᆞᆫ ᄎᆡᄉᆡᆨ이 션명ᄒᆞ야 ᄃᆞᄅᆞᆫ ᄃᆡ 보디 못ᄒᆞ던 거시 이시니’라고 한 것을 비롯하여 연주자는 ‘픙뉴ᄒᆞᄂᆞᆫ 사람’, 중국음악은 ‘듕국 풍뉴’, 당시의 음악은 ‘요ᄉᆞ이 픙뉴’, 아악은 ‘태묘와 샤딕에 ᄡᅳᄂᆞᆫ 풍뉴’. 음악의 이치는 ‘풍뉴 묘리’, 장례의식에서 본 주악은 ‘상가의 풍뉴’라고 한 예가 확인된다.
이 밖에도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이춘풍전(李春風傳)」 및 고전 소설 및 가사, 시조 등의 문학 작품에서 주악을 온갖풍류 · 각색풍류 · 갖은풍류 · 각각풍류 · 육각풍류라고 하거나 어악풍류 · 어전풍류, 장악원풍류와 같이 주악의 주체나 소속을 나타낸 경우도 있다. 풍류를 주악 의미로 사용한 문학 작품의 대표적인 예는 의유당 남씨의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다.
나들이에 관청 소속의 악공과 여기(女妓)를 동반한 의유당은 이들의 주악을 감상하면서 ‘풍류를 일시에 주奏하니 대무관大廡官 풍류라 소리 길고 화(和)하여 들음즉 하더라 / 모든 기생을 쌍 지어 대무(對舞)하여 종일 놀고~’라고 하였다. ‘주하다’, ‘잡히다’, ‘치다’라는 말로 연주를 나타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역어유해(譯語類解)』, 『몽어유해(蒙語類解)』, 『왜어유해(倭語類解)』 등의 사전류에 한자 ‘악(樂)’을 ‘풍류[풍뉴]’라 하고, ‘음악을 연주한다’는 뜻의 ‘작악(作樂)’, ‘동악(動樂)’은 ‘풍뉴ᄒᆞ다’, ‘악공(樂工)’은 ‘풍뉴아치’라고 정리되었다.
한편, 구체적으로 주악의 편성이나 공연 양식의 의미를 나타내는 용례도 있다. 주27, 주28, 대풍류(大風流) 등이다. 사죽풍류는 현악기와 관악기가 어울린 연주라는 뜻이고, 극풍류는 창우의 판소리 공연을 뜻하는 극가(劇歌)의 의미이며, 대풍류는 큰 규모의 공연을 일컬었다. 오늘날 대풍류는 줄풍류에 대응하는 관악합주로 정의되지만, 고문헌의 몇 가지 용례는 ‘성대한 공연’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병연(李秉淵)이 잔치를 주제로 지은 시에서 ‘기악의 대풍류를 재촉해 열었네[催開妓樂大風流]’[^29]라는 구절, 기언정(奇彦鼎)이 사마시(司馬試) 합격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에서 ‘대풍류를 배설하였다[設大風流]’[^30]라고 한 것은 관악합주라는 의미보다는 ‘음악을 베푼다’는 뜻의 설악(設樂)이란 말과 같이 ‘큰 공연을 벌였다’는 뜻이라야 문맥이 통한다.
임천상(任天常)이 지은 주31에는 나주목사 고모부를 방문했다가 잔치에서 대풍류를 본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이는 나주관청 소속 여기들의 춤 공연이 주를 이룬 기악(伎樂)이다. 임천상은 이 잔치에서 승무 · 무고 · 선유락 · 처용무 · 검무 감상한 것을 관악(觀樂)이라 하고, 이를 ‘세간에서 대풍류라 한다[俗所謂大風流也]’고 주32 이와 달리 ‘노ᄅᆡ명창 기ᄉᆡᆼ쳡을 두고 갈가 다리고 갈가 / 모시젹삼 속ᄌᆞ락에 ᄊᆞ고 간들 두고 가랴 / 가다가 쥴風流 만나거든 놀고나 주33라는 시조는 가곡과 어울리는 작은 편성의 현악 합주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 줄풍류 용례를 보여준다.
풍류라는 말은 오늘날 음악 관련 용어로 정착되어 사용되고 있다. 주로 선비계층이 향유해 온 음악을 선비풍류 혹은 풍류로 일컫거나, 악대의 편성을 구분하는 대풍류, 줄풍류, 그 음악 지역적 구분을 위한 향제줄풍류, 경제줄풍류, 풍류다스름, 풍류굿거리와 같은 곡명, 풍류가락 · 반풍류와 같은 풍물장단의 명칭, 풍류 모임을 이르는 풍류회, 풍류 모임을 위한 공간을 뜻하는 풍류방 등의 용어들이다. 이 밖에도 풍류라는 말은 풍류가야금[가야금의 일종], 풍류안(風流眼)[정재 「포구락」의 소도구 명칭], 풍류지(風流枝)[정재 「춘앵전」의 춤사위 명칭]와 같이 각기 다른 층위의 용어와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다.
풍류가 ‘악’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던 전통사회의 관행을 고려하면, 음악 용어로서의 풍류는 풍류도의 연원과 맞닿아 있는 고대 제천의식의 악무 전통인 무속음악과 풍물놀이 등의 주34부터 궁중음악까지 아우를 수 있는 총체적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풍류 혹은 풍류음악은 선비풍류음악의 동의어로 정의하는 것은 자칫 제한적일 수 있다. 또한 악기와 악곡, 주악 편성, 주악인, 주악 공간을 나타내는 용어와 결합된 파생어의 경우도 개별 단위의 해석뿐만 아니라 통시적 관점에서 점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풍류는 사상, 종교, 정신, 미학, 문학, 음악, 춤, 놀이, 미술, 건축, 무예 영역에서 연구되어 왔다. 풍류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탐구부터 역사적 전개와 개념의 변화, 풍류가 구현되는 시대별, 계층별, 분야별, 계기별 양상을 파악하고, 동아시아 공통 문화로서의 현상과 차별점을 드러내려는 시도들이 양적으로 상당히 축적되었으며, 이를 현실의 문화나 교육에 적용하려는 응용 연구도 다수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들을 통해 풍류란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용되었고, 당대의 문화를 구성하는 새로운 경향성을 아우르면서 한국문화의 저변을 형성해 온 주요 근원이며 한국인의 삶에 양식과 미적 심성을 내포하는 미적, 윤리적, 정신적 가치라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