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보(玄甫)로 쓰기도 한다. 서경(西京) 출신이다.
1217년(고종 4) 거란이 서경을 침략하자 서경병마사(西京兵馬使) 상장군 최유공(崔兪恭)과 판관(判官) 예부낭중(禮部郎中) 김성(金成) 등이 서경의 병사를 거느리고 막으려 하였다.
그런데, 최유공의 수탈이 심하자 병졸 최광수(崔光秀)가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소집하고 서경으로 향하였다. 이때 최유공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김성은 취하여 인사불성이었다.
최광수는 정병을 모으고 격서를 북계제성(北界諸城)에 전하여 대사를 거사하려 하였다. 이때 필현보는 정의(鄭顗)와 함께 최광수를 만나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최광수의 목을 베어 큰 성과를 이루었다.
1233년 낭장(郎將)으로 동료 홍복원(洪福源)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선유사(宣諭使)인 대장군 정의(鄭毅)·박녹전(朴祿全) 등을 죽인 뒤에 성을 탈취하여 배반하고 갖은 불법을 자행하다가, 최우(崔瑀)가 보낸 가병(家兵) 3,000명 및 북계병마사(北界兵馬使) 민희(閔曦)에 의하여 붙잡혀 개경에 압송되어 사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