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성소(聖韶), 호는 금하(琴下). 본관은 진주(晉州). 서울 출신으로 가곡의 명창 하순일(河順一)과는 사촌간이다. 작은아버지 하중곤(河仲鯤)에게 가곡을 배운 다음, 하중곤의 스승인 최수보(崔守甫)에게 사사하여 대성하였다.
1901년 한성소윤 겸 한성재판소 판사, 1909년 내장원(內藏院) 문부정리위원(文部整理委員)·전남독쇄관(全南督刷官), 1910년 진안군수를 역임하고, 국권상실 후 관직을 그만두고 음악에만 전념하였다. 1911년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 학감(學監), 1912년 조선정악전습소 상다동(上茶洞) 여악분교실장(女樂分敎室長)을 겸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12년에는 대정권번(大正券番)을 창립하고, 1924년에는 조선권번을 창립하였다. 1926∼1937년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촉탁으로 취임하면서 가곡·가사·시조를 전수하였다. 1928년 빅터레코드회사에서 가곡을 취입하였고, 1931년 가곡집 『가인필휴(歌人必携)』를 펴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가곡은 모두 그의 전창(傳唱)으로 남창가곡 89곡, 여창가곡 71곡, 가사에 「백구사(白鷗詞)」·「황계사 黃鷄詞)」·「춘면곡 春眠曲)」·「죽지사 竹枝詞)」·「어부사」·「상사별곡」·「길군악」·「권주가」의 8곡이 있다.
그리고 시조에는 평시조·중허리시조·지름시조 등이 있다. 계면(界面) 초수대엽(初數大葉)과 언편(言編)이 음반으로 전한다. 그의 가곡은 이병성(李炳星)과 이주환(李珠煥)을 통하여 이동규(李東圭)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