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조선 초기 궁중에서 12월 그믐날 행하던 나례(儺禮:잡귀를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 뒤에 연출하는 종합적인 무악(舞樂)으로, 학무(鶴舞)·연화대(蓮花臺)·처용무(處容舞)를 잇따라 공연하는 것이다.
≪용재총화 ?齋叢話≫에 따르면 <처용무>는 처음에 한 사람이 흑포사모(黑布紗帽)로 추었는데, 뒤에 오방처용(五方處容)으로 변하였다 한다.
또한, ≪악학궤범≫에 따르면 <처용무>는 전도(前度)와 후도(後度)가 있어 두 번 연출하는데, 전도에는 학무·연화대·회무(回舞) 등이 없고 <오방처용무 五方處容舞>만 추지만, 후도에서는 학·연화대·의물(儀物) 등을 갖추어놓고 동발(銅?)을 든 악사가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을 인도한다.
다음에 청·홍·황·흑·백의 오방위(五方位) 처용이 따르고, 인인장(引人仗)·정절·개(蓋)·봉화무동(奉花舞童)·여기(女妓)·집박악사(執拍樂師)·향당악공(鄕唐樂工)이 차례로 따른다. 이 춤의 순서는 <영산회상만 靈山會相慢>을 연주하면 기공(妓工)이 <영산회상불보살 靈山會相佛菩薩>의 노래를 부르며 회무한다.
박(拍)을 치면 큰 북이 울리고 <영산회상령 靈山會相令>에 맞추어 오방처용이 족도환무(足蹈歡舞)하고, 의물을 든 사람, 가면무동 등도 함께 족도하고, 요신극환(搖身極歡)이 끝나면 음악이 그치고 오방처용이 물러나 좌우로 나누어 선다.
다음에는 청학과 백학이 나와 학무를 추다가 연화(蓮花)를 쪼아, 미리 감추어두었던 두 동녀(童女)가 튀어나오면 두 학은 놀라 뛰면서 퇴장한다.
두 동녀는 연못으로 내려와 춤을 추고, 춤이 끝나면 여기 두 명의 도창(導唱)으로 여러 기녀들이 <미타찬 彌陀讚>·<본사찬 本師讚>·<관음찬 觀音讚>의 순서로 제창한 다음, 각각 순서대로 나가면 음악이 그치고 춤은 끝난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로는 ≪악학궤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