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전라북도 민속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대표적 상류가옥으로 한말 건축기술을 전승받은 순 한식건물이다. 조선말 왕권이 붕괴하자 궁중건축양식이 민간주택에 도입된 전형적인 예이다.
당시 일류 도편수(都邊首 : 목수의 우두머리)와 목공 등 연인원 4,280명이 압록강, 강원도 오대산 등지의 목재를 사용하여 2년6개월 만에 백미 4,000석을 투입하여 건축하였다 한다.
솟을대문은 3칸에 부연(浮椽)이 달렸으며, 기와에 암막새와 수막새가 있고, ‘白樂中之閭(백낙중지려)’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형적인 고가풍의 건축물로서 총건평은 69평이다.
백낙중은 뛰어난 효자로서 고종으로부터 승훈랑(承訓郎) 영릉참봉에 제수되었으며, 사후에 이를 현창하기 위하여 솟을대문으로 된 효자문에 김돈희(金敦熙)의 명필로 휘호된 현판을 게양하여 백낙중지려로 명명하였고, 본관은 백낙중의 아호 중 인(忍)자를 기념하여 학인당으로 명명하고, 이광렬의 휘호로 된 현판을 게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