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회 ()

명현화상 중 한광회 초상
명현화상 중 한광회 초상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국장도감제조, 판의금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문숙(文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5년(숙종 4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한경감사|국장도감제조|판의금부사|형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에, 국장도감제조, 판의금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문숙(文淑). 한성익(韓聖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배상(韓配商)이고, 아버지는 한사덕(韓師德)이며, 어머니는 이언경(李彦經)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8년(영조 14)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을 거쳐 1744년(영조 20) 양구현감으로 나갔다. 1746년 경직으로 돌아와 도당록(都堂錄: 홍문관의 교리·제학 등을 선발하기 위한 의정부의 제2차 인사기록)에 입록되었다.

부수찬·교리를 지내면서 영조의 뜻을 거슬러 외직으로 좌천된 대간을 구원하고 영조의 탕평책을 적극 호응하기도 하였다. 지평·부교리·수찬·헌납 등 언관직을 거쳐 1754년 승지로 승진하였다. 영조의 신임을 받아 대사성, 이조참의, 대사헌, 이조참판 등의 관직에 특별이 제수되었다.

1766년 경기감사가 표하군(標下軍)을 지나치게 많이 논상할 것을 조정에 요구하였다가 파직되었지만 영조로부터 신임을 지속적으로 받아 형조판서·이조판서에 여러 차례 특별히 기용되는 한편, 영조의 의중에 맞추어 행동하였다.

1775년 한경감사로 나갔다가 정조가 즉위하면서 체직되어 우참찬으로 국장도감제조를 맡았다. 이후 여러 차례 판의금부사와 형조판서를 지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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