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이봉창(李奉昌)이 일본천왕을 폭살하려던 작탄(炸彈) 항일투쟁에 고무되어 조직되었다.
수령은 이웅(李雄)이고, 그 밖의 간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인 김철(金澈), 의경대장(義警隊長) 박창세(朴昌世), 그리고 문일민(文逸民)·김홍일(金弘壹) 등이었으며, 간장(簡章)도 발표하였다.
이웅은 김구(金九)와 연결되어 작탄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독립투쟁은 온건한 방법으로는 안되며 투탄항쟁방법을 취하여야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내외로부터 상해 등지로 찾아온 유능한 청년을 한인애국단에 소개하였다. 이 중에는 윤봉길(尹奉吉)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웅의 무장항쟁계획과 그 활동이 일본 영사관과 경찰에 알려져 항상 감시를 받던 중 윤봉길의 훙커우공원의거(虹口公園義擧)가 성공하였다. 그 뒤 이웅이 피신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