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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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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이 통일신라부터 조선 초기까지 농업 경제에 관해 저술하여 1986년에 간행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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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이태진이 통일신라부터 조선 초기까지 농업 경제에 관해 저술하여 1986년에 간행한 학술서.
내용

향촌의 농업 경제, 특히 농업기술 문제인 농법(農法)의 변화와 사회 변동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논술한 책이다. 1986년 지식산업사(知識産業社)에서 간행하였다.

책은 크게 Ⅰ∼Ⅴ절로 편제되고 다시 제Ⅰ절은 3장, 제Ⅱ절은 2장, 제Ⅲ절은 4장, 제Ⅳ절은 2장, 제Ⅴ절은 2장 등 모두 5절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3장은 모두 개별 논문으로 사회사의 전개 과정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즉, 그 제Ⅰ절 ‘휴한농법하(休閑農法下)의 사회구성’, 제Ⅱ절 ‘집약농업기술(集約農業技術)의 실현과 사회변동’, 제Ⅲ절 ‘집약농업의 전개와 사회질서 재확립 추구’, 제Ⅳ절 ‘집약농업경제하의 상품유통 발달’, 제Ⅴ절 ‘수전집약농업(水田集約農業)의 추이(推移)’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었다.

각 시대의 역사적 조건에 따라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우리 사회의 전통적 기반을 향촌의 농업 경제, 그 중에서도 농업기술 문제에서 구하고, 농법의 변화와 사회 변동의 관계에 유의하고 있다.

전근대 사회의 경제 기반은 농업이었기 때문에 농촌 사회의 변화, 농업 기술의 문제 등은 사회 변동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에 단위 면적당 생산력의 향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은 집약 농업의 실현에서 가능했다고 하면서, 그 실마리를 신라통일기의 휴한 농법에서 풀어나가고자 했다.

즉, 신라의 촌락문서를 여러 측면에서 검토한 저자는 당시 신라통일기의 사회는 휴한농법의 제약으로 인해 인력에 의해 생산력이 좌우되었기 때문에, 자체의 생계와 국가에 대한 부담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사회 구성을 편호(編戶)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보이는 도휴(稻畦 : 전답)를 근거로 하여 고려 때까지도 휴한 농법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추론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 말 조선 초에 이르러 새로운 역사 담당층으로서 신흥사족의 소임이 증대되면서 그들의 주도 하에 우리 나라의 농법은 점차 집약적인 연작상경법(連作常耕法 : 봄·가을로 교대로 토지를 후한하지 않고 경작하는 법)으로 전환되어 갔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에는 시비법(施肥法 : 토지를 기름지게 하는 방법)의 개발이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흥사족들은 생산력의 증대를 도모해 수차(水車)·천방(川防) 등 관개 기술에 적극적 관심을 보이면서,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강남농법(江南農法)을 수용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15세기를 전후해서는 단위 면적당 생산력이 크게 증대되어 사회 전체의 경제력이 향상되었는데, 이는 토지지배 관계의 모순을 척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도로서, 거기에 신흥사족이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대두할 수 있는 기반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농업 기술의 발달은 자연농(自然農)의 성장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고, 사회 구성에 있어서도 대단위적인 것에서 소단위적인 것으로의 이행을 초래하게 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농법의 개선은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오고, 생산력의 증대는 사회 전체의 경제력을 향상시키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회 변동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조선사회에서는 15세기를 전후해 농촌의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향촌에 생활 기반을 가진 중소 지주층으로서의 신흥사족들은 그 경제력을 발판으로 향촌 질서를 재편했다는 것이다. 그 예증으로서 유향소복립운동(留鄕所復立運動), 사창제(社倉制), 향약의 보급 등을 들고 있다.

16세기 사림 세력의 정치 활동의 활성화나 서원의 건립을 비롯한 향촌자치 운동의 증대는 확실히 경제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농업 발전의 계기적 성과는 장시(場市)를 비롯한 유통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고, 나아가 국제 교역까지도 증대시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농토의 확보 노력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특히, 사회 변동의 내면성에 유의한 역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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