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동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경동중학교 교사,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학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성악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96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2년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민경찬 (서울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4년 06월 0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경동중학교 교사,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학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성악가.

내용

1912∼1996. 서울 출생. 안기영(安基永)에게 성악을 배운 후 1938년 6월 27일부민관(府民館)에서 개최된 ‘안기영문화생 제1회 음악발표회’를 통해 데뷔를 하였다. 1939년 조선일보 주최 음악콩쿨 성악부에서 입상을 하였고, 선린상업고등학교와 1943년 동경고등음악학원(東京高等音樂學院)을 졸업하였다.

해방 후 배재중학교와 경동중학교 음악교사를 거쳐 해군정훈음악대(海軍政訓音樂隊)의 총무부장으로 활동을 하였고, 한국음악협회 초대 사무총장과 부이사장을 지냈다. 1957년부터 1977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4년 부민관에서 제1회 독창회를 개최하였으며, 한국 오페라의 초창기 시절인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초연인 구노(Gounod)의 오페라 「파우스트(Faust)」에 출연하였다. 195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국가곡집(韓國歌曲集)』(향성회)을 편찬하였는데, 이 가곡집의 출판을 계기로 한국 가곡이 정착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또 그 정형이 결정되었다.

1973년에는 약 6개월간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밴쿠버 등지에서 부인인 소프라노 이관옥(李觀玉)과 함께 독창회와 이중창의 밤을 개최하여 한국 가곡을 해외에 알리기도 하였다. 성악가와 음악교육자로서 한국 음악예술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한국가곡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음악총람(韓國音樂總覽) 상 』(한국음악협회, 1991)

  • - 『음악연감(音樂年鑑)』(음악연감편찬위원회, 세광음악출판사,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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