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군 ()

함양 세종 왕자 한남군 묘역
함양 세종 왕자 한남군 묘역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서자인 왕자.
이칭
군옥(群玉)
시호
정도(貞悼)
성명
이어(李𤥽)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59년(세조 5)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왕자
관련 사건
계유정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서자인 왕자.
개설

이름은 이어(李𤥽). 자는 군옥(群玉). 세종의 넷째 서자(庶子)이며, 어머니는 혜빈 양씨(惠嬪楊氏)이다. 부인은 예빈녹사(禮賓錄事) 권격(權格)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41년(세종 23) 세종이 왕비와 더불어 온수현(溫水縣) 가마곡(加麽谷)에 행차하였을 때 임영대군(臨瀛大君)과 함께 궁궐의 수비를 관장하였으며, 이듬해 한남군에 봉하여졌다.

1450년(문종 즉위년) 개성부(開城府)의 상인 건직(乾直)의 가산을 탈취하였다는 명목으로 종부시(宗簿寺)로부터 송사(訟事)를 당하고 패소하여 직사를 파면당하는 징계를 받았다.

이것은 그가 건직이 살아 있을 때 건직에게 재화를 주어 식리(殖利)를 꾀하려 하였으나, 그가 갑자기 죽음으로 인하여 그 책임을 물어 재산을 취하여온 것인데 건직의 아내 고온(古溫)이 중추원사(中樞院使) 이승손(李承孫)의 비(婢)였던 까닭에 승손의 사주를 받아 종부시에 고한 사건이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금성대군(錦城大君) · 영풍군(永豊君) · 혜빈 양씨와 함께 역모를 꾀하였다는 죄로 금산에 유배되었고, 아산(牙山), 양지(陽智)로 각각 이배(移配)되었다가 1456년(세조 2)에 함양(咸陽)으로 이배되었다.

그 뒤 모든 전토(田土)와 노비를 몰수당하고 1459년(세조 5) 배소(配所)인 함양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영조 때에 이르러 신원(伸寃: 원통함을 풀어내림)되었다. 시호는 정도(貞悼)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문종실록(文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