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개성부유수, 형조참판,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앙(士仰)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01년(연산군 7)
사망 연도
1558년(명종 13)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개성부유수|형조참판|한성부좌윤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개성부유수, 형조참판,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앙(士仰). 한치원(韓致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내섬시첨정 한운(韓運)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한세환(韓世桓)이며, 어머니는 사용(司勇) 이영령(李永齡)의 딸이다.

1526년(중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정자가 되고, 저작·정언에 이르러 잠시 물러나 있다가 정유삼흉이 처벌된 이후 재기용되어 전적이 되었고, 수찬·장령 등을 지냈다.

1544년 집의, 1546년(명종 1) 전한·직제학·부제학·동부승지 등에 이르렀고, 이듬해 좌승지가 되었다. 1548년 도승지에 올랐다가 1549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이 때 기생을 데리고 여러 읍을 차례로 돌며 민폐를 끼친 죄로 파직당하였다.

1551년 첨지중추부사로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개성부유수가 되었으며, 1554년 형조참판, 이듬해 한성부좌윤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용재집(容齋集)』
『인재집(忍齋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