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목활자본. 1918년 후손 종승(宗升)·인섭(仁燮)이 편집하고, 1930년 10대손 홍익(洪翊)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서종급(徐宗伋)의 서문이, 권말에 곽종석(郭鍾錫)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상에 오언절구 60수, 칠언절구 62수, 오언율시 18수, 칠언율시 6수, 오언고시 2수, 칠언고시 3수, 악부(樂府) 3편, 가사 1편, 부(賦) 4편, 전(箋) 2편, 권하에 기(記) 3편, 지(誌)·설(說) 각 1편, 책(策) 2편, 부록으로 유사·묘갈명·금릉창의록(金陵倡義錄) 등이 수록되어 있고, 끝에 아들 치우(致禹)의 문집인 『영취재유고(暎翠齋遺稿)』가 실려 있다.
시는 평이한 시어를 구사하였는데, 매화·대나무·달의 순으로 읊은 「한벽당십영(寒碧堂十詠)」과 새소리를 듣고 읊은 「팔금영(八禽詠)」, 국한문혼용으로 노래한 「만흥삼결(漫興三闋)」 등은 모두 16세기의 시가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잡저의 「어적책(禦敵策)」은 임금이 족식족병(足食足兵) 외 선후본말과 조정을 바르게 하는 방법을 물은 데 대한 답책이고, 「치도책(治道策)」은 임금이 치도를 물은 데 대한 답책으로, 경신검자(敬信儉慈)를 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금릉창의록」에는 함께 의병을 일으킨 유희달(柳希達) 외 37명의 이름과 관직, 그리고 창의 때 맡은 임무 및 행한 일들이 간략하나마 기록되어 있어, 당시 의병사연구에 도움이 된다.
이 밖에도 「심학도상(心學圖象)」의 심오한 뜻을 근본으로 하여 지은 「사방해(四方解)」 등이 있다. 『영취재유고』에는 「권학문」 등 몇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