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9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에 있던 독립관에서 경성실업전수학교(京城實業專修學校)로 개교하였다. 1933년 3월김주익(金周益)에게 인수되었는데, 당시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자 김주익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라는 신념에서 학교를 인수하였다. 수업연한은 3년이었고, 9개 일반과목과 7개 상업과목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1936년 3월한성상업학교(漢城商業學校)로 교명을 변경하고, 1939년 3년제 제1본과와 5년제 제2본과로 개편하여 일반 20개 과목, 상업 8개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1941년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1944년 4년제 한성공업학교를 병설하였다.
광복 후 6년제 한성중학교로 개칭하면서 인문계학교로 전환하고, 1951년 3년제 한성중학교와 한성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되었다. 1979년 10월 야간 고등학교를 설치하였고, 2002년 4월 청소년 적십자단을 창단하였다.
교훈을 ‘의기ㆍ근검’으로 제정하여 민족 자생력 배양에 역점을 두었다가, 2008년 ‘습관은 의지보다 강하다, 좋은 습관을 들이자’로 개정하였다. 설립자 김주익은 일인(日人)이 사용하던 ‘경성(京城)’이라는 교명을 우리 고유의 수도 명칭인 ‘한성(漢城)’으로 바꾸었다.
또한 1940년 지금의 교사를 신축할 때에는 일제가 모르게 교문에 31개의 돌계단, 즉 3ㆍ1계단을 만들어 학생들로 하여금 3ㆍ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도록 하였다. 김주익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어 1968년 한성 동문은 3ㆍ1기념탑을 건립하였고, 1974년에는 교정에 의기근검석을 제막하였다.
현재 문예반ㆍ논술반ㆍ과학반ㆍ방송반 등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고, 운동부는 럭비부가 1954∼1969년까지 전국럭비선수권대회에서 중고등부를 석권하여 1964년 한국일보사 럭비 부문 신인체육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75년 창단한 태권도부는 1998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하였고, 2007년에는 제42회 대통령기 전국태권도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달성하는 등 현재까지 전국ㆍ세계대회에서 총 200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1954년『한성신문』을 창간하였으며, 매년 예절표어ㆍ포스터 전시회, 종합 체육대회, 합창대회 등을 한성중학교와 같이 개최하고 있다.
2009년 현재 36학급에 1,309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직원은 76명이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