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성수(成洙), 또는 이상일(李相一).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44년 3월 학도병으로 일본군병영을 탈출하여 중국 푸양(阜陽)에 주둔한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제3지대의 발전을 위해서 자진 푸양에 잔류한 기간간부의 한 사람이다.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한광반(韓光班)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같은 해 11월 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의 특명으로 적점령지역 내의 초모 및 첩보공작 임무를 띠고 홍순명(洪淳明)·김영진(金永鎭)·김진동(金鎭東) 등을 인솔하고 일본군의 최고사령부가 있는 상해(上海)로 침투하였다.
1945년 3월 13일 대담한 공작방법으로 한교(韓僑)청년들과 접촉을 전개하면서 거점확보 및 초모공작을 중점으로 하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상해에서 밀고자에 의하여 일본군 특무기관원의 습격을 받고 총격전 끝에 붙잡혔다. 1945년 5월 13일 난징[南京]형무소에서 25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당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