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사기(韓謝奇)의 손자이며, 충혜왕 묘정에 배향된 한악(韓渥)의 아들이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우대언으로서 판삼사사(判三司事)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서연관(書筵官)이 되었고, 1349년(충정왕 1)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제수되었으며, 다음해에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라 계성군(繼城君)에 봉하여졌다.
공민왕은 즉위한 다음해에 친히 한중례의 집에 들러 담론하였다. 1372년(공민왕 21) 난수산(蘭秀山)의 적선(賊船)을 임의로 산 것이 말썽이 되어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