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수(仁叟). 한순상(韓舜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재(韓載)이고, 아버지는 한백흠(韓百欽)이며, 어머니는 이연휴(李延休)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9년 정언으로 육상궁(毓祥宮)의 장막을 훔친 훈련대장과 과장(科場)의 부정행위를 단속하지 못한 형조판서의 체직 및 탐학한 수령들의 파직을 주장하였다.
이후에도 대간으로 재직하면서 본분을 다하지 않는 수령과 정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중앙관리들의 탄핵에 과감한 언론을 행사하였다. 1764년 영조의 산림(山林) 억제 정책에 적극 동조하여 헌납에서 승지로 승진하였다.
안동부사로 나갔다가 대사간·승지 등을 지냈다. 1772년 대사헌으로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하던 조관빈(趙觀彬)과 송명흠(宋明欽)을 논계하지 않은 죄목으로 국문을 당하고 흑산도로 유배갔다가 곧 풀려나 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