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도승지, 특진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선교랑(宣敎郎)으로서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승문원저작·봉상시직장 등을 지냈으나 폐모론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뒤에 주서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였다.
인조반정 후에는 충청도선유어사(忠淸道宣諭御史)로 나간 바 있고, 이듬해인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는 공주로 왕을 호종하였다. 그 뒤 병조좌랑·정랑·성균관직장 등을 역임하고, 정언·집의 등 8년 동안 대간으로 봉직하였다. 그리고 통정으로 승계하여 동부승지·우부승지·병조참지·여주목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을 방어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선(嘉善)으로 승계하였다. 예조·병조·형조의 참판과 한성부서윤 등을 역임했으며, 효종 때에는 역시 예조참판·도승지·특진관·부호군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가의(嘉義)에 승계했고, 1660년에 졸하였다.
성품이 안온해 직언은 하지 않으면서도 왕을 잘 보필하였다. 또한 교결(皎潔)의 명성을 떨치지는 않았으나 행위가 깨끗했으며, 이름난 학자는 아니지만 어리석음을 능히 깨우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송자대전(宋子大全)』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