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중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공조참의,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장(景張)
  • 석탄(石灘)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628년(인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부승지|공조참의|좌승지
  • 출생 연도1559년(명종 14)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태진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공조참의, 좌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장(景張), 호는 석탄(石灘). 서울 출신. 예조참판 한윤창(韓胤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포서별제 한극공(韓克恭)이고, 아버지는 생원 한천뢰(韓天賚)이며, 어머니는 절도사 변명윤(邊明胤)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성환도찰방(成歡道察訪)을 거쳐 160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권지정자(校書館權知正字)를 지내고, 서원현감(西原縣監)이 되어 도둑을 잡은 공으로 3품으로 승급되었다.

병조정랑으로 재직 중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 때 이이첨(李爾瞻)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당여(黨與)로 만들려 하였으나 불응하여 안악군수로 좌천되었다.

1622년 (광해군 14) 동부승지에 승진, 토목의 남설 및 궁금(宮禁)의 문란을 극언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샀다. 인조반정 이후 직언을 평가받아 공조참의를 거쳐 좌승지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음집(淸陰集)』

  • - 『백주집(白洲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