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장(景張), 호는 석탄(石灘). 서울 출신. 예조참판 한윤창(韓胤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포서별제 한극공(韓克恭)이고, 아버지는 생원 한천뢰(韓天賚)이며, 어머니는 절도사 변명윤(邊明胤)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성환도찰방(成歡道察訪)을 거쳐 160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권지정자(校書館權知正字)를 지내고, 서원현감(西原縣監)이 되어 도둑을 잡은 공으로 3품으로 승급되었다.
병조정랑으로 재직 중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 때 이이첨(李爾瞻)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당여(黨與)로 만들려 하였으나 불응하여 안악군수로 좌천되었다.
1622년 (광해군 14) 동부승지에 승진, 토목의 남설 및 궁금(宮禁)의 문란을 극언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샀다. 인조반정 이후 직언을 평가받아 공조참의를 거쳐 좌승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