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1343년(충혜왕 복위 4) 원나라의 사신 타적(朶赤)·내주(乃住) 등이 충혜왕을 감금할 때 왕의 시종으로 같이 포박당하였다. 그러나 당시 원나라 자정원사(資政院使) 고용보(高龍普)와 친교가 있어 화를 면하였다.
1363년(공민왕 12)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최영(崔瑩)과 함께 김용(金鏞)이 일으킨 흥왕사(興王寺)의 변을 토벌하여 1등공신이 되고, 이어 추성익대공신(推誠翊戴功臣)의 호를 받았다. 또, 홍건적의 침입 때 서울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에 봉해졌다.
이듬해 첨의평리(僉議評理)로 승진되어 국가의 기밀을 관장하게 되었다. 이때 간관들이 이를 반대하여 고신(告身: 임명장)에 서명하지 않았으나 왕이 강제로 서명하게 하고 이들을 파면시켰다.
1367년 오인택(吳仁澤)·안우경(安愚慶) 등과 비밀리에 모의하여 신돈(辛旽)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비밀이 누설되어 실패하고 유배를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