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시대 경기수사, 형조판윤, 좌변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계축옥사|인조반정
  • 사망 연도1623년(인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곽산군수|온성부사|창성부사|경기수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민혁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경기수사, 형조판윤, 좌변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선조연간에는 1587년(선조 20) 곽산군수, 1594년 온성부사, 1603년 창성부사 등 주로 외직을 전전하였다. 광해군 즉위년에는 경상병사로 있다가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좌변포도대장으로 있을 당시 서얼인 서양갑(徐羊甲)·박응서(朴應犀) 등 소위 강변칠우(江邊七友)의 강도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맨 먼저 체포된 박응서에게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그는 이 사건을 역모로 꾸며 고변하도록 유인하고 서양갑 등을 무고함으로써 마침내 계축옥사를 일으켰다.

이에 따라 김제남(金悌男)을 죽이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또한 유폐 사사케 하였다. 그 뒤 1615년에 경기수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계축년의 공으로 지중추부사와 수사(水使)에 제수되었다.

이후 지사, 비변사 당상을 거쳐 1619년 7월에는 팔좌(八座)의 하나인 형조판윤에 이르렀으니, 박응서의 옥사를 일으킨 공으로 승진한 것이다. 1622년에는 다시 좌변포도대장을 맡았으며, 공홍병사와 군기시제조를 역임하였다. 인조반정이 성공하자마자 평안병사로 있던 그는 이듬해 1월에 박응서와 함께 주살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