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별곡 ()

관동장유가 / 함라별곡
관동장유가 / 함라별곡
고전시가
작품
1875년(고종 12) 조희일(趙熙一)이 지은 가사.
이칭
이칭
조희일, 관동장유가, 도해가, 조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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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75년(고종 12) 조희일(趙熙一)이 지은 가사.
구성 및 형식

가사집 『관동장유가(關東張遊歌)』(규장각도서)에 세번 째로 실려 있다.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18행이다.

제목 밑에 “이 글은 화롱쟝이 ᄇᆡᆨ시 고을의 가 지은 것”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화롱’은 조희일의 호인 ‘화농(華農)’의 와음이고, ‘ᄇᆡᆨ시’는 ‘백씨(伯氏)’로 「도해가(渡海歌)」의 작가인 조희백(趙熙百)이며, 백씨의 고을이란, 곧 조희백이 성당창세곡조운관(聖堂倉稅穀漕運官)을 겸하여 부임했던 함열군(咸悅郡)임을 알 수 있는데, 함열은 이 고을에 함라산(咸羅山)이 있어서 옛날에는 함라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내용 및 평가

내용은 지은이의 형님이 조운관을 겸한 함열군수로 부임할 때 80세의 노모를 모시고 동행하였다가, 백씨가 성당창에서 거둔 호남지방 8읍의 대동세곡(大同稅穀)과 궁중포량(宮中砲糧) 1만여석을 10척의 큰 배에 싣고 서울의 광흥창(廣興倉)으로 향하여 떠날 때에, 험한 뱃길에 중책을 맡아 떠나는 형님과 작별하기 섭섭하여 함열에서 100여리나 떨어진 오식도(烏息島)까지 같은 배를 타고 가 배웅하고, 함열의 관아로 돌아와서 혼자 술을 마시며 한가로이 글짓기를 즐기는 자신의 풍류를 찬미한 것이다. 바다의 여행을 기리면서 자신의 풍류를 찬미한 흔하지 않은 서정적 정감가사이다.

참고문헌

『을해조행록(乙亥漕行錄)』
『한국기행문학연구』(최강현, 일지사, 1982)
「미발표가사 도해가소고」(최강현, 『고황』25, 경희대학교학도호국단,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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