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순종 때 활약한 거문고의 명인. 본관은 양근(楊根). 일명 재소(在韶). 자는 치관(致寬), 호는 겸와(謙窩). 1876년(고종 13) 7월 가전악(假典樂)이 되었고, 1907년 전악(典樂)이 되었다. 1892년의 진찬(進饌) 및 1901년과 1902년의 진연(進宴) 때 집박전악(執拍典樂)이었다.
이병문(李炳文)·김경남(金景南)과 아울러 한말 거문고 삼절(三絶)로 알려졌으며, 「여민락(與民樂)」의 연주에 뛰어났고, 청초간결한 탄법의 연주자로 알려지고 있다. 1908년에는 제2대 국악사장(國樂師長)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