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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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인물
근대, 제2대 국악사장 및 초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
이칭
치관(致寬)
겸와(謙窩)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54년
사망 연도
1916년
본관
양근(楊根)
출생지
서울
주요 경력
국악사장,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함재운은 근대에 제2대 국악사장 및 초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이다. 1908년에 장례원의 제2대 국악사장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에 장례원의 업무가 이왕직으로 이관되고 악원의 조직이 아악부로 변경되었을 때 초대 아악사장을 맡았다. 인원 감축 혹은 해산 논의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전래의 황실 제례와 연향 등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 초창기 아악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목차
정의
근대, 제2대 국악사장 및 초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
인적사항

본관은 양근(楊根)이다. 자는 치관(致寬)이고, 호는 겸와(謙窩)이다. 세습 궁중음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형에게 대금과 단소를, 장악원(掌樂院) 전악(典樂)을 지낸 강인식(姜寅植)에게 주 전공인 거문고를 배웠다. 할아버지 함윤옥(咸潤玉, 18001834, 대금), 아버지 함제홍(咸濟弘, 대금), 큰형 함재영(咸在韺, 대금), 작은형 함재호(咸在頀)도 모두 장악원 음악인이었고, 제4대 아악사장(雅樂師長)을 지낸 함화진(咸和鎭, 18841948, 거문고)은 그의 아들이다. 거주지는 서울 다동으로 확인된다.

주요 활동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활동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전악선생안(典樂先生案)』에는 1876년(고종 13) 장악원의 전악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92년(고종 29) 임진진찬(壬辰進饌)과 1901년(광무 5) 신축진찬(辛丑進饌), 1902년(광무 6) 임인진연(壬寅進宴) 때 집박악사(執拍樂師)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08년(순종 2) 1월에 종2품 장례원 국악사장(國樂師長)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에는 조직이 개편된 아악부의 아악사장을 맡아 1916년까지 재직하였다. 재직 기간 동안 악원 행정과 악원 관리, 음악 감독 등의 역할을 총괄하였다. 악원의 인원 감축, 기구 해산 논의 등으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종묘 및 문묘 제례, 1913년 덕수궁 돈덕전에서 거행된 고종탄신축하연 등에서 역할을 다하며 초창기 아악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거문고 연주가로서 좋은 평판을 얻었는데, 그의 거문고 연주는 20세기 초반 이왕직아악부의 교육 과정을 통해 함화진을 비롯한 거문고 연주자들에게 이어졌다.

참고문헌

원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전악선생안(典樂先生案)』
『임진진찬의궤(壬辰進饌儀軌)』
『신축진찬의궤(辛丑進饌儀軌)』
『임인진찬의궤(壬寅進饌儀軌)』
『대한제국직원록(大韓帝國職員錄)』
『이왕직직원록(李王職職員錄)』

단행본

장사훈, 『국악대사전』(세광출판사, 1984)

논문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학위 논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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