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근(楊根)이다. 자는 치관(致寬)이고, 호는 겸와(謙窩)이다. 세습 궁중음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형에게 대금과 단소를, 장악원(掌樂院) 전악(典樂)을 지낸 강인식(姜寅植)에게 주 전공인 거문고를 배웠다. 할아버지 함윤옥(咸潤玉, 18001834, 대금), 아버지 함제홍(咸濟弘, 대금), 큰형 함재영(咸在韺, 대금), 작은형 함재호(咸在頀)도 모두 장악원 음악인이었고, 제4대 아악사장(雅樂師長)을 지낸 함화진(咸和鎭, 18841948, 거문고)은 그의 아들이다. 거주지는 서울 다동으로 확인된다.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활동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전악선생안(典樂先生案)』에는 1876년(고종 13) 장악원의 전악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92년(고종 29) 임진진찬(壬辰進饌)과 1901년(광무 5) 신축진찬(辛丑進饌), 1902년(광무 6) 임인진연(壬寅進宴) 때 집박악사(執拍樂師)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08년(순종 2) 1월에 종2품 장례원 국악사장(國樂師長)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에는 조직이 개편된 아악부의 아악사장을 맡아 1916년까지 재직하였다. 재직 기간 동안 악원 행정과 악원 관리, 음악 감독 등의 역할을 총괄하였다. 악원의 인원 감축, 기구 해산 논의 등으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종묘 및 문묘 제례, 1913년 덕수궁 돈덕전에서 거행된 고종탄신축하연 등에서 역할을 다하며 초창기 아악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거문고 연주가로서 좋은 평판을 얻었는데, 그의 거문고 연주는 20세기 초반 이왕직아악부의 교육 과정을 통해 함화진을 비롯한 거문고 연주자들에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