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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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에서 창설되었던 민영 종합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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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5년 서울에서 창설되었던 민영 종합통신.
내용

1945년 12월 국제통신(國際通信)과 연합통신(聯合通信)이 합병하여 전국의 신문사·방송국을 회원으로 하는 조합제의 합동통신사를 발족하였다.

이 통신은 처음 미국의 AP통신과 수신계약을 맺고 난 반년 동안 국제통신사인 미국의 INS, 영국의 로이터(Reuter), 프랑스의 AFP와 계약을 맺어 우리 나라 최대의 통신사가 되었다.

사시(社是)를 ‘엄정중립·정확, 신속한 보도로 정상적 여론 환기·국제친선 증진에 기여’로 내걸고 회원사조합제통신사로 출발하였으나, 회원사의 출자가 어렵게 되자 김동성(金東成)을 사장으로 하는 주식회사로 체제를 바꾸었다.

1947년에는 사상 최초로 사설무전통신시설을 갖추어 지방통신을 시작하였으며, 1949년부터는 일간 6편(便)과 특신판(特信版)을 발행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합동통신 사옥을 점거하여 그들의 기관통신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1·4후퇴 이후는 부산에서 ≪전시판 합동통신≫을 발행하였다.

1951년 3월 서울수복 후 시설과 기계를 강화하고, 1954년 10월 세계 3대 통신의 수신을 자동화하고 하루 7편제로 증간하였다. 또, 11월에는 언론계의 숙원이던 사진전송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1955년 12월에는 영문표기를 ‘Hapdong News Agency’로 바꾸었다.

1958년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국문종합연감인 ≪합동연감≫을 발행하고, 1964년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영문연감인 ≪코리아 애뉴얼 Korea Annual≫을 창간하였다. 1965년에는 텔레타이프에 의한 국내뉴스의 해외송신을 실현시켰으며, 서울의 신문·방송들에 대한 국문 텔레타이프송신도 시작하였다.

1967년에는 광고기획실을 신설하고, 일본의 광고대행사인 덴쓰(電通)와 계약하여 광고대행업을 시작하였으며, 1971년에는 해외경제판을 발행하였다. 1972년에 국내 언론기관·단체·기업체·금융기관 등에 대한 해외경제뉴스의 텔레타이프송신을 시작하였다.

1967년부터는 원양어선과 상선을 위한 국내최초의 대선박(對船舶) 뉴스송신을 시작하였다. 1974년에는 AP와 로이터의 수신수단을 우주통신을 위한 위성회로방식으로 전환하였다.

미국의 워싱턴·뉴욕, 영국의 런던, 일본의 동경, 대만의 타이베이(臺北) 등에 특파원을 두었다. 정부의 언론통폐합정책에 따라 1980년 12월 31일 연합통신(聯合通信)에 흡수되었다. 민간통신으로 35년이나 활동하였을 뿐 아니라, 그 업적이나 규모로 보아 우리 나라 통신사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연합뉴스

참고문헌

『합동통신사사』(합동통신 사사편찬위원회, 1982)
『합동연감-1971-』(합동통신사, 1970)
『편집인협회보』(한국편집인협회, 1970.6.17.)
『합동통신 30년』(합동통신사, 1975)
「한국통신사의 구조적특성에 관한 연구」(팽원순,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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