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상연되던 무극(舞劇)의 하나. 1873년(고종 10)에 평안남도 선천지방의 무극을 처음으로 궁중에 들여온 것으로 홍문연(鴻門宴)의 이야기를 무극화한 것이다.
진말(秦末)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관중(關中)에 먼저 들어가려고 다투는데, 유방이 먼저 관중에 들어가자 항우가 노하여 군사를 홍문(鴻門)에 머무르게 하고, 다음날 아침을 기하여 유방을 치려 한다.
항우의 계부(季父) 항백(項伯)은 유방의 부하 장량(張良)과 사이가 좋았던 관계로 이 계략을 말해주자 유방은 그 다음날 홍문에 나가 사과를 한다. 그 때 항우의 모신(謀臣) 범증(范增)은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여 유방을 찔러죽이려 하였으나, 유방의 부하 번쾌(樊噲)의 변설(辯舌)로 무사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춤의 절차는 1893년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 전한다. 한편, <항장무>에는 <선유락 船遊樂>과 같이 반드시 <대취타 大吹打>가 연주된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도(舞圖)에는 정현석(鄭顯奭)의 ≪교방가요≫가 있다. <항장무>에 쓰던 일부의 무복과 투구 등이 국립국악원에 보존되어 있을 뿐 그 춤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