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말기에 경기·황해·충청도의 수군을 통할하기 위해 설치된 군영.
내용
처음에는 경기도수군을 일괄 절제(節制)하였고, 이어서 연해의 약 2,000여 군병(軍兵)을 통할하였다. 그러던 것을 같은 해 4월 경기도와 종전의 경기·충청·황해도의 수군 및 연해 육군을 통할하던 통어영(統禦營)의 범위가 축소됨으로써 그 밑에 있던 수군이 이 군영으로 속하게 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강화부까지도 이 군영의 관할로 들어와 그 기능이 한층 강화되어, 군영의 최고책임자인 해방총관(海防摠管)이 강화유수까지 겸하게 되었다.
이 후 총융청(摠戎廳)에 소속되었던 남양·파주·삭녕·마전·고양·교하·양주·적성·연천 등 여러 읍의 속오군(束伍軍)도 이 군영에 속하게 되었다. 1885년 3월 이 아문의 기지인 부평부가 항구에 가까워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용산방(龍山坊)만리창(萬里倉)으로 옮겼다. 이 후 병력은 계속 늘어났는데, 같은 해 5월에는 송영(松營)의 신련군(新練軍)까지도 관할하게 되었다.
1886년 3월 다른 군영의 명칭 예에 따라 친군기연해방영(親軍畿沿海防營)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군제(軍制)는 총융사영(摠戎使營)을 모방하여 시행되었으며, 최고책임자의 명칭은 총관기연사무(摠管畿沿事務)에서 기연해방사로 바뀌었다.
이 아문은 본래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군제 변통(軍制變通)과 함께 신설되었던 것으로, 1888년 4월 또 한 번의 군제 변통을 겪게 됨으로써 친군오영(親軍五營)의 우영(右營) 및 후영(後營)과 함께 하나로 합하여져 통위영(統衛營)으로 재편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
- 『일성록』
- 『한국군제사-근세조선후기편-』(육군본부,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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