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전후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항일민족운동단체로서 1919년 11월 25일 황해도 장연군 읍내 김해성(金海星) 집에서 오두현(吳斗鉉) 등 10여명이 3·1운동에 자극되어 해서지역의 독립투사를 세 차례에 걸쳐 소집하여 발기인 총회를 열었다.
회원은 90여명에 달하였으며, 그 중 장연군내에 거주하는 유지회원은 46명이었다. 조직의 목적은 3·1운동과 같은 적극적인 항일투쟁이었다.
회장에 오두현, 서무에 장규섭(張奎燮)·장영근(張瑛根), 재무에 김세연(金世淵)·이응오(李膺五), 이사에 김인경(金仁卿)·오성근(吳成根)·김근하(金根河)·김순영(金順泳)·박진룡(朴鎭龍)·한상칠(韓相七)·노춘근(盧春根) 등이다. 일본경찰의 탄압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