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종 16년(1879)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해우당 김락풍(金樂豊)이 지은 살림집이다. 문수면 수도리는 예안(禮安) 김씨와 반남(潘南) 박씨의 집성촌이며, 주변 자연 형국이 하회마을과 유사하다.
이 집은 마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데 산기슭에 자리잡고 북서로 향을 잡았다. 현재는 ㅁ자형 평면의 안채 1동만 남아 있는데 사랑채가 부설되어 있다.
6칸 대청이 중심에 있고 우측에 2칸의 안방, 좌측에 상방(上房 : 바깥 주인이 거처하는 방)과 아랫상방이 있다. 다 모기둥[方柱]을 세웠으나 앞쪽 기둥 둘만 두리기둥[圓柱]을 사용하였다. 안방과 사랑채 사이에 부엌이 2칸 있고 부엌에 이어 사랑채의 책방이 있다.
그 책방 우측으로 다시 방이 되면서 돌출, 사랑채 평면을 확보하였다. 책방 앞쪽에 마루방 그 좌측으로 사랑방 2칸, 방 앞에 3칸 대청이 전개되고 앞의 두리기둥 밖으로도 반반 칸 나간 마루가 있고 그 끝에 난간이 설비되어 있다.
이 사랑방은 앞에서 보면 댓돌 없이 높은 다락기둥[樓下柱]이 서 있는 구조며, 마루방은 사분합 띠살문이 달려서 상당히 고품격인 듯이 보인다. 사랑방 뒤로 반반 칸 넓이의 반침과 안마당으로 통하는 통로가 열렸다. 사랑방 좌측이 중문 칸, 다음이 마루방에 이어 아랫사랑이다.
북쪽으로 꺾이며 고방, 다음이 ‘목방’인데 이는 신혼 부부가 초야를 지내는 곳이라 한다. 목방 북쪽이 부엌이고 상방으로 이어져 ㅁ자 평면이 마감된다. 부엌에는 다락이 있다.
구조상에서는 별다른 특색이 없으나 평면 구성에서는 종가로서의 다용도와 기능이 고려되었던 듯하다. 아랫사랑은 젊은이들의 전유 공간으로 큰사랑에서 분할된 듯하고 큰사랑은 누마루가 지니는 격조나 권위를 고려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다수 모일 수 있도록 평면을 증대시키느라 애를 썼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