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령무 ()

목차
관련 정보
순조무자진작의궤 / 향령
순조무자진작의궤 / 향령
무용
작품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내용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6명의 무원(舞員)이 品자 모양으로 벌려 서서 각각 두 손에 방울을 들고 가곡(歌曲)의 <계락 界樂> 가락에 맞추어 노래부르며, 장단에 따라 방울을 흔들고 뿌리면서 춤을 춘다.

춤은 가곡 중 계락의 대여음(大餘音)에서 나아가고, 초장부터 5장까지 노래부르는 사이에 수수쌍불(垂手雙拂)·좌소전(左小轉)·우소전(右小轉)·합선(合蟬)·좌타장(左打場)·우타장(右打場)·좌정수(左呈手)·우정수(右呈手)·합정수(合呈手) 등의 춤사위에 의하여 춘다.

이 춤에 나오는 무두사(務頭詞)·중박사(中拍詞)·미후사(尾後詞)의 세 가지 창사 가운데에서 1930년대에는 순조 어제(御製)인 무두사만 부르며 춤을 추었다. 무두사 창사는 다음과 같다.

“옥전요궁주관현(玉殿搖宮奏管絃)/열신선(列神仙)/봉삼인대타향연(鳳衫麟帶拕香烟)/무편편(舞翩翩)/유원종금(惟願從今)/군왕수(君王壽)/영제천(永齊天)/춘풍담탕백화전(春風澹蕩百花前)/만년년(萬年年).”

이 춤의 기(妓)의 복식은 1828년(순조 28)의 ≪진작의궤≫에 나오는 무도(舞圖)에서 볼 수 있으며, 무동의 복식은 1829년의 ≪진찬의궤≫에 의하면 아광모(砑光帽)를 쓰고, 녹라포(綠羅袍)·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에 무우리(無憂履)를 신는다.

이 춤의 무보와 창사는 1893년(고종 30)의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 전하며 1930년대까지도 거문고와 정재의 명인인 이수경(李壽卿)의 지도에 의하여 전수되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
『고종계사정재무도홀기(高宗癸巳呈才舞圖笏記)』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한국전통무용』(성경린, 일지사, 1982)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