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6명의 무원(舞員)이 品자 모양으로 벌려 서서 각각 두 손에 방울을 들고 가곡(歌曲)의 <계락 界樂> 가락에 맞추어 노래부르며, 장단에 따라 방울을 흔들고 뿌리면서 춤을 춘다.
춤은 가곡 중 계락의 대여음(大餘音)에서 나아가고, 초장부터 5장까지 노래부르는 사이에 수수쌍불(垂手雙拂)·좌소전(左小轉)·우소전(右小轉)·합선(合蟬)·좌타장(左打場)·우타장(右打場)·좌정수(左呈手)·우정수(右呈手)·합정수(合呈手) 등의 춤사위에 의하여 춘다.
이 춤에 나오는 무두사(務頭詞)·중박사(中拍詞)·미후사(尾後詞)의 세 가지 창사 가운데에서 1930년대에는 순조 어제(御製)인 무두사만 부르며 춤을 추었다. 무두사 창사는 다음과 같다.
“옥전요궁주관현(玉殿搖宮奏管絃)/열신선(列神仙)/봉삼인대타향연(鳳衫麟帶拕香烟)/무편편(舞翩翩)/유원종금(惟願從今)/군왕수(君王壽)/영제천(永齊天)/춘풍담탕백화전(春風澹蕩百花前)/만년년(萬年年).”
이 춤의 기(妓)의 복식은 1828년(순조 28)의 ≪진작의궤≫에 나오는 무도(舞圖)에서 볼 수 있으며, 무동의 복식은 1829년의 ≪진찬의궤≫에 의하면 아광모(砑光帽)를 쓰고, 녹라포(綠羅袍)·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에 무우리(無憂履)를 신는다.
이 춤의 무보와 창사는 1893년(고종 30)의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 전하며 1930년대까지도 거문고와 정재의 명인인 이수경(李壽卿)의 지도에 의하여 전수되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