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담양부사, 부사,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보(敬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양천(陽川)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평시서령|풍저창주부|담양부사|부사
  • 출생 연도1566년(명종 2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임민혁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담양부사, 부사,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보(敬甫). 허감(許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초(許礎)이고, 아버지는 허잠(許潛)이며, 어머니는 민희열(閔希說)의 딸이다. 숙의(淑儀) 허씨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그가 의금부도사로 있을 때인 1613년(광해군 5) 12월 30일에 그의 딸이 간택되어 숙의가 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 47세로서 이전에는 한미한 관직에 만족해야만 하였으나 점차 왕의 은택을 크게 입게 되어 평시서령·풍저창주부를 거쳐 1616년 담양부사가 되는 등 순서를 무시한 승진이 이루어져 2년 만에 부사에 올랐다.

그리고 이 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 당시에 여알(女謁)이 성행하여 임금의 후취(後娶)인 다섯 숙의와 상궁, 임씨와 정씨 두 소용(昭容)들이 위복을 마음대로 하는 풍조가 심하였는데, 허씨 일족도 모두 관작을 받는 등 위세가 대단하였다.

이듬해인 1617년에는 왕의 밀지로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며, 곧이어 봉상시정을 제수받았다. 그러나 병이 심하여 사직을 청하였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그 해 12월에는 준직(準職)이 가자되었다. 그리고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뒤에 숙원 허씨는 중도부처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