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보(敬甫). 허감(許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초(許礎)이고, 아버지는 허잠(許潛)이며, 어머니는 민희열(閔希說)의 딸이다. 숙의(淑儀) 허씨의 아버지이다.
그가 의금부도사로 있을 때인 1613년(광해군 5) 12월 30일에 그의 딸이 간택되어 숙의가 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 47세로서 이전에는 한미한 관직에 만족해야만 하였으나 점차 왕의 은택을 크게 입게 되어 평시서령·풍저창주부를 거쳐 1616년 담양부사가 되는 등 순서를 무시한 승진이 이루어져 2년 만에 부사에 올랐다.
그리고 이 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 당시에 여알(女謁)이 성행하여 임금의 후취(後娶)인 다섯 숙의와 상궁, 임씨와 정씨 두 소용(昭容)들이 위복을 마음대로 하는 풍조가 심하였는데, 허씨 일족도 모두 관작을 받는 등 위세가 대단하였다.
이듬해인 1617년에는 왕의 밀지로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며, 곧이어 봉상시정을 제수받았다. 그러나 병이 심하여 사직을 청하였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그 해 12월에는 준직(準職)이 가자되었다. 그리고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뒤에 숙원 허씨는 중도부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