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광복회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9월 경 양한위(梁漢緯)·권태일(權泰鎰)로부터 상해판 『독립신문』 및 경고문 등을 전달받아 부호와 관공리에게 발송, 최대한의 지원을 호소하여 모금한 8,000원의 군자금을 1920년 상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그 해 8월에 박용선(朴容善)·조한명(趙漢明)·이동찬(李東燦) 등과 군자금 모집을 모의하고 권총과 탄약을 휴대, 서울 서린동에 사는 엄홍섭(嚴弘燮)을 설득하여 2만원을 군자금으로 교부받아 곧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1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공적조서』(국가보훈처, 1984)
- 「京城地方法院判決文」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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