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요부(堯夫). 허용(許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색(許穡)이고, 아버지는 허열(許悅)이며, 어머니는 권현(權睍)의 딸이다.
1681년(숙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가주서에 올랐으나 복평군(福平君) 이정(李楨)과 평소 친밀한 사이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지평·정언·교리·사간·집의 등을 지내고 홍문록(弘文錄)과 도당록(都堂錄: 홍문관의 관원을 선발하기 위한 제2차 인사기록)에 입록되었다.
1692년(숙종 18) 응교로 선악도병(善惡圖屛)을 국왕에 올려 선을 힘쓰고 악을 경계할 것을 주장하였다. 곧 승지로 승진하여 비변사당상들이 국정에 힘쓰지 않는 점을 거론하여 조정의 분란을 야기하였다.
이후 강릉부사로 나갔으나 갑술환국 후 서인이 집권하면서 역졸을 동원하여 재목을 남벌하고 전세를 과도하게 거두어 사용한 죄목으로 탄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