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 출생.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허만정이고, 어머니는 하위정이다. 부인 이행좌(李幸佐)와의 사이에 3남2녀를 두었다.
1936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1952년 제일제당 전무이사로 있었으며, 1958년에 삼성물산 사장이 되었다. 그 뒤 1961년에 삼양통상주식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이병철(李秉喆)회장, 조홍제 효성회장과 함께 초기 삼성(三星)을 이끈 3인 가운데 한 분으로 재계 1세대 원로이다. 이후 1962년에 한국복싱연맹회장으로 있었고, 1969년에 삼화방직(三化紡織) 이사가 되었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경원건설사장으로 있었고, 1969년에는 동광판유리사장이 되었다.
이듬해 프로골프협회장과 1971년 한국올릭픽위원회(KOC) 위원 및 1973년 골프협회장을 지냈다. 1975년 경원건설회장으로 있다가, 이듬해 삼양통상회장이 되었다. 다시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골프협회장으로 있었고, 1983년에는 아시아태평양아마골프회의 회장이 되었다.
그 뒤 1985년 골프협회의 명예회장이 되었고, 1990년부터 1999년 9월 사망시까지 삼양통상명예회장이었으며, 또한 1996년 1월부터 사망시까지 대한골프협회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그가 1957년 10월 창업한 삼양통상의 성장과정을 보면, 1958년 12월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야구장갑공장을 신축하고, 1970년 같은 동에 제혁공장을 신축하였으며, 1974년 2월 삼양스포츠주식회사를 전액 출자하여 설립하였다. 또한 1975년 8월 서울 도봉구 제혁공장을 군포공장으로 확장, 이전하였고, 1980년 4월 삼화피혁공업주식회사를 흡수, 합병하였다.
1985년 2월에는 부산공장을 신축하여 가동하고, 이듬해 2월 한국나이키 합자투자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88년 4월 반월공장을 신축 가동하고, 1988년 1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11월 10일 상장하였다.
자본금이 1999년 말 현재 약 150억 원에 신발과 가죽운동용품 등의 연간매출액이 1537억9476만 원에, 내수로 77억5108만 원에 수출은 1460억4308만 원이고 종업원이 3,400여 명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산업생산을 통한 국민경제에 기여한 것뿐만 아니라, 생전에 체육에 기여한 공로로 체육회 공로상과 체육훈장 기린장 및 1998년 11월 12일 한국프로골프협회 감사패 등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