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월에 창간되어 1928년 1월에 종간되었다. 이관용(李灌鎔)·이긍종(李肯種)·하준석(河駿錫) 등이 중심이 되었으며, 「신문지법(新聞紙法)」에 의한 일제의 탄압을 받다가 통권 제11호로 폐간되었다(그 중 제10호는 압수되었음).
편집경향은 다소 보수적이면서 민족주의적 경향을 나타냈기 때문에 일제의 검열에 의하여 거의 매호마다 20∼30면, 심할 때는 50여면씩 삭제를 당하면서 간행되었다.
「출판법」에 의하여 간행되는 잡지가 아니라 「신문지법」에 의하여 간행되었기 때문에, 정치·경제·문화 등 시사문제(時事問題)를 논평할 수 있었고, 실제로는 조선사정연구회(조선민중의 사정을 과학적 태도로 조사, 연구함을 목적으로 1925년 9월에 창립된 단체)의 기관지적 성격을 띤 잡지였다.
문학방면에도 관심을 가져 문예란에 이병기(李秉岐)의 시조 「으스름 달밤」, 나도향(羅稻香)의 소설 「벙어리 삼룡」이 실리기도 하였다. 비록, 단명하기는 하였지만 한국잡지사상 『개벽』과 더불어 2대언론잡지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