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지(明之), 호는 정암(整菴)·창재(暢齋). 정장(鄭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자순(鄭子淳)이고,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설(鄭舌)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산원(散員) 강우(姜祐)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41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가 되었다. 1425년(세종 7) 사온서주부 겸 승문원박사가 되고, 1427년 감찰이 되었다. 그 뒤 예조정랑으로 검상을 겸직하였으며, 이어서 사인·전농시소윤(典農寺少尹)으로 있을 때 1434년 훈시(訓試)에 급제하여 지승문원사가 되었다.
1444년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공조·호조·예조의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경창부윤(慶昌府尹)으로 나갔다가, 1449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그 때 양계의 지도를 만들어 바쳤다. 1454년(단종 2) 판한성부사로 있다가 1455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이 해에 세조가 즉위하자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63년(세조 9) 양성지(梁誠之)와 함께 『동국지도』를 만들어 바쳤고, 그 해에 부사과가 되었다. 해서(楷書)와 전서(篆書)에 뛰어나 나라의 새보(璽寶)와 관인(官印)의 글씨를 맡아서 썼다. 또한, 전고(典故)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의제(儀制)도 찬하였다. 시호는 공대(恭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