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의 장손인 해남현감 정호례(鄭好禮)가 광해군5년(1613)에 자손들 훈도를 위하여 工자형 집을 지었다고 전하여 온다.
대문간채○안채○사랑채○사당채가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간채, 사랑채와 안채가 한 건물로 연계되어 있는 점이 이 집의 특색이다. 대문 바라다 보고 서면 일렬로 10칸이나 되는 건물이 우뚝해서 우람해 보인다.
대문이 중심부에 있고 향좌측에 2칸 외양간, 사랑방 2칸, 2칸대청이 있고 우측으로 곳간, 창고 방이 연속된다. 곳간에서 북쪽으로 꺾이면서 2칸 부엌이고 다음이 방 2칸이다. 다음이 목욕칸이다. 목욕칸 우측에 다시 1칸의 마루가 있다. 목욕탕과 안방 좌측으로부터 4칸대청 다음에 상방이 있는데 앞퇴마루가 자리잡았다. 뒤로 반반칸의 반침이다.
평면도를 보지 않고는 얼른 이해되기 어려운 이런 구조는 관공서의 관해(官廨)나 사찰의 요사채에서나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살림집에 도입한 것은 대담한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당은 정면3칸, 측면1칸 규모이다. 사주문으로 출입할 수 있는 일곽을 낮은 담장으로 둘렀다. 안채 주변에도 담장이 있는데 ’93,94년도에 국비를 들여 담장보수를 하였다. 집은 5량집이며 구조는 매우 질박하다. 그러면서도 대청에 앞뒤로 퇴칸을 둔다던지 하는 일로 격조 높이는데 애를 썼다. 좋은 집이라는 평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