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판중추부사, 좌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록되고,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졌으며, 동부승지에 올랐다. 곧 이어 도승지에 오르고, 품계가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이듬 해에는 견성군(甄城君: 성종의 아들)을 옹립하려던 이과(李顆)의 난을 다스린 공로로 정난공신(定難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나, 정난공신은 1517년 3월에 노영손 외에 모두 삭훈되었다
이어 병조판서에 올라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해 경연에서 국사를 논의하였다. 그 뒤 판중추부사로 잠시 옮겼다가, 호조판서·좌참찬·좌찬성 등을 지냈다. 이 때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해서 정부 요로에 대거 등용된 사림들이 훈구세력을 비판하며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1516년 그는 정국공신의 명단을 개정하는 척하면서, 남곤(南袞)·심정(沈貞)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숙청하였다. 당시 남곤·심정 등은 홍경주의 딸 희빈이 중종의 총애를 받는 것을 기화로 조광조를 모략하였다. 그리고 홍경주는 훈구세력을 대표해 조광조의 일파를 처형해야 한다고 밀고했던 것이다.
이때 죽은 사람을 후일 기묘명현이라 하였다. 그 뒤 판중추부사를 거쳐 좌찬성을 다시 역임하고, 1521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시호는 도열(度烈)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기묘록(己卯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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