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섭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희재(喜哉)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1831년(순조 3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한성부판윤|형조판서|예조판서
  • 출생 연도1776년(영조 5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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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희재(喜哉). 홍계심(洪啓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준해(洪準海)이고, 아버지는 홍병협(洪秉協)이며, 어머니는 조엄(趙儼)의 딸이다. 병조판서 홍만섭(洪晩燮)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2년(순조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10년 수찬이 되었으며, 1812년 교리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사은정사(謝恩正使) 이상황(李相璜)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18년 대사간, 1821년 대사성을 거쳐,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1823년 승지가 된 뒤 이조참의·예모관(禮貌官)·대사성·대사간 등을 거쳐, 1827년 산실청부제조(産室廳副提調)가 되었다. 같은해 한성부판윤·형조판서·예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828년 부사 유정양(柳鼎養), 서장관 박종길(朴宗吉)과 함께 동지정사(冬至正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와 예조판서가 되었다.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로서 왕세자가 병으로 죽자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았다. 1831년 대호군으로 재직중 죽었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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