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문하시중 홍언박(洪彦博)의 아들이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여 서울이 함락되고 왕이 피난할 때 상장군으로서 왕을 호종, 이후 서울 수복에 공을 세웠다.
이로써 1363년 논공행상 때 호종공신 1등, 수복공신(收復功臣) 1등에 피봉되었다. 1364년 여진(女眞)의 삼선(三善)·삼개(三介) 등이 침입하여 화주(和州) 이북이 점령당하자 경천흥(慶千興)·최영(崔瑩) 등과 함께 출정하여 이들을 격퇴시켰다.
1373년 왜인이 구산현(龜山縣)의 삼일포(三日浦)에 침입하자 경상도도순문사가 되어 이들을 쳐 크게 이겼다. 다음해 탐라를 정벌할 때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전라도도순문사가 되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이 해에 아들 홍윤(洪倫)이 공민왕을 시해하자 이에 연루되어 원주(遠州)에 유배되었다가 우왕이 보낸 최인철(崔仁哲)에게 교살(絞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