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익지(翼之), 호는 화옹(禾翁). 예문관대교 홍계정(洪係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춘경(洪春卿)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홍성민(洪聖民)이며, 어머니는 윤희(尹曦)의 딸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훈음(勳蔭)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에 오르고, 1610년에 수안군수가 되었다.
다음해 아버지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친 뒤 옥천·선산 군수를 역임하고, 1617년에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가 되었으나 이 때 광해군의 난정과 대북파의 전횡을 보고 외직으로 나갈 것을 자청하여 가평군수가 되었다.
이듬해 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이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폐모론이 논의되어 조정에 의견이 분분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항상 『주역』을 곁에 두고 수시로 읽었다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