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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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예조판서, 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정(文貞)
  • 시가(時可)
  • 졸옹(拙翁)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1594년(선조 2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제학|예조판서|대사헌|호조판서
  • 출생 연도1536년(중종 3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공원영 (중경공업전문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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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예조판서, 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 홍윤덕(洪潤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계정(洪係貞)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홍춘경(洪春卿)이며, 어머니는 고성군(固城君) 군수 이맹우(李孟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1년(명종 16) 진사가 되고, 156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자·교리 등을 지냈다. 1567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한 뒤 대사간을 거쳤다.

1575년(선조 8) 호조참판에 이르러 사은사로 명나라에 건너가 종계변무(宗系辨誣)에 대하여 힘써, 명나라 황제의 허락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 뒤 부제학·예조판서·대사헌·경상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0년(선조23) 8월에 종계변무의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아울러 토역(討逆)한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익성군(益城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 판중추부사가 되었다가 건저문제(建儲問題)로 정철(鄭澈)이 실각하자, 그 일당으로 몰려 북변인 부령으로 유배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특사로 풀려나 복관되어 대제학을 거쳐,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당시 신진사류의 지도급 인물이요, 윤두수(尹斗壽)와 함께 서인으로 유능한 선비였다. 저서로는 『졸옹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낙전당집(樂全堂集)』

  • - 『졸옹집(拙翁集)』

  • - 『상촌집(象村集)』

  •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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