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밤의 미매장」, 「목마와 숙녀」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金光均) · 이한직(李漢稷) · 김수영(金洙暎) · 김경린(金璟麟) · 오장환(吳章煥) 등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이정숙(李丁淑)과 혼인하였다. 그 해에 자유신문사, 이듬해에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48년에는 김병욱(金秉旭) · 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金次榮) · 김규동(金奎東) · 이봉래(李奉來)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1년에는 육군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한 바 있고, 1955년에는 직장인 대한해운공사의 일 관계로 남해호(南海號) 사무장의 임무를 띠고 미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46년에 시 「거리」를 『국제신보(國際新報)』에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47년에는 시 「남풍」, 영화평론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신천지(新天地)』에, 1948년에는 시 「지하실(地下室)」을 『민성(民聲)』에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49년 김수영 · 김경린 · 양병식(梁秉植) · 임호권(林虎權) 등과 함께 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광복 후 본격적인 시인들의 등장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1950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 「밤의 미매장(未埋藏)」 · 「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작품들은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하여 주목을 끌었다.
1955년에 발간된 『박인환선시집』에 그의 시작품이 망라되어 있으며 특히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서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1956년 작고 1주일 전에 쓰여진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기도 하였다. 1976년 그의 20주기를 맞아 장남 박세형(朴世馨)이 『목마와 숙녀』를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 『목마와 숙녀와 별과 사랑』(이동하 외, 문학세계사, 1986)
- 『현대한국시인연구』(김해성, 대학문화사, 1985)
- 『박인환평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윤석산, 영학출판사, 1983)
- 『시인박인환과 문학과 그 주변』(김광균 외, 근역서재, 1982)
- 『한국현대문학사탐방』(김용성, 국민서관, 1973)
- 「박인환론」(박철석, 『현대시학』, 1981.2.)
- 「잊을 수 없는 시인의 회상」(안도섭, 『자유신문』, 1957.9.2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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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황해도 재령군에 있는 읍. 교통 요충지이며, 재령 철산의 철, 은적 광산의 아연ㆍ납, 형석 광산의 점판암 따위가 유명하다. 명승지로 장수산이 있다. 군청 소재지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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