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판. 88면. 작자의 제1시집이자 데뷔 시집이다. 1949년 7월 산호장(珊瑚莊)에서 간행하였고, 다시 1985년 학원사에서 출간한 『조병화전집』 권1 『바다를 잃은 소라』에 재수록되었다.
첫 면에 “이 적은 시집을 삼가 김준(金埈, 조병화의 아내)님께 드리나이다.”라는 헌사가 쓰여 있고, 뒤이어 목차·본시·후기의 순서로 짜여 있다. 시 「목련화」·「추억」·「소라」·「바다」 등 조병화 초기의 대표작을 포함해서 모두 26편이 실려 있다.
조병화의 초기 시의 특징은 대체로 사랑의 정감을 바탕으로 해서 그리움과 고독을 노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두 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사랑하고 싶어졌지요/번화한 거리에서 다시 내가 그대를 보았을 땐/남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아주 잊어버리자고 슬퍼하며/미친 듯이 바다기슭을 달음질쳐 갔읍니다”(「초상(肖像)」)라는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 고독의 문제가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이 시집의 주요 배경은 바닷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시인이 당시에 인천중학교의 교사로 재직했던 사실과 연관된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인생과 사랑의 문제를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형상화한 데서 서정성이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바다엔/소라/저만이 외롭답니다/큰 바다 기슭엔/온종일/소라/저만이 외롭답니다”(「소라」)와 “바다/겨울바다는/저 혼자 물소리치다 돌아갑니다/아무래도/다시 그리워/다시 오다간 다시 갑니다”(「해변」)라는 시편들이 그 예가 된다.
또한, 이 시집에는 과거적인 상상력 또는 회상의 정감이 비관적인 정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잊어버리자고/바다기슭을 걸어보던 날이/하루/이틀/사흘//여름가고/가을가고/조개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잊어버리자고/바다기슭을 걸어가는 날이/하루/이틀/사흘”(「추억」)과 같이 과거적인 회상과 비애의 정조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조병화의 그리움과 고독, 방황과 애상의 정조는 해방공간의 혼란 속에서 인간적인 숨결과 체온을 간직하게 함으로써 인간 구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안간힘의 반영이라고 하겠다.